갈옥세설(褐玉世說)

이기고도 진 강남시장 오세훈, 지고도 이긴 서울시장 한명숙, 사막에서 꽃을 피운 김두관

褐玉 2010. 6. 3. 22:56


아.. 9회말 투아웃에 역전홈런이라니.. 새벽 4시까지 봤는데 2천여 표차.. 아슬아슬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래도 설마했구만. 자고 일어났더니 이게 웬.. 난데없는 강남테러..

하지만 오늘의 패배는 패배만은 아니다. 이긴 자가 이기고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과 군과 청와대와 언론까지, 대한민국의 권력이란 권력은 다 등에 업고도, 무르팍 깨지고 코피 터진 후에야 간신히 오세훈은 한명숙을 이길 수 있었다. 사실상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편파적인 게임룰을 만들어 놓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니까.

복기를 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게임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에는 다양한 함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겼다고 희희낙락한 민주당은 뭐가 좋다고 저리 해피한지 모르겠다. 내가 보건댄, 아무리 봐도 민주당이 예뻐서 표가 간 건 아닌 것 같은데. 또 소설 쓰고 자기도취에 빠지나 보다. 언제 정신 차릴 예정인지. 선택할 답지가 없어서 이명박이 같은 불한당한테 대한민국의 미래를 저당 잡힌 그 책임을 또 새까맣게 잊었나 보다. 아니, 깨닫기는 했을런지. 어리석은 종내기들.

손에 땀을 쥐는 승부는 서울이었을지 모르지만 진짜 드라마틱한 승부는 내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 나왔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 놓으면 개를 후보로 내세워도 당선된다는 비아냥을 듣던 이곳에서 김두관이 도지사가 돼버린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야권단일화를 통해 선택지가 단순해진 것과, 그간의 체제에 염증을 느낀 20% 정도의 표심이 결국 일을 낸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바람이 초박빙의 승부에서 결과를 좌우해버린 것이다.
이젠 미안함이 좀 덜하다. 더 큰 일을 해야 할 인물이 이 조그마한 바닥에서도 연거푸 물을 먹는 것에 못내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자꾸만 누군가가 그의 모습에서 어른거려 더 그랬다.

실패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선 안된다. 이제는 한번 할 때도 된 것이다. 이번에는 기회도 정말 좋았다. 어쩌면 하늘이 그에게 길을 열어준 것인 지도 모른다. 잠시 빗장이 열린 그 틈에 그는 과감하게 발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육중한 돌문을 한껏 열어젖혀 버렸다.

"노 대통령께서 7~8번 도끼질을 해놓은 것을, 제가 한 두번 더 도끼질해서 넘어뜨린 것 뿐입니다."


에이.. 씨팔.. 괜히 울컥하잖아.. 거, 사람 울컥하게 만드는 것도 배운거요?


3일 오후, 경남도지사 당선자 신분으로 故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있는 김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