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언어생활

글과 말에 대한 단상(斷想) 2 - 외래어와 외국어

褐玉 2009. 2. 23. 17:38
일본어를 배우면서 경악한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제일 경악스러웠던 것을 들라면 아마도 아무 거리낌 없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막 쓰는 그 현란한 외래어 사용이 아닐까 싶다. 이건 뭐.. 일본어 음가 자체가 되게 단조로울 뿐 아니라 발음상의 한계도 있고(일본어에 비하면 한국어는 그래도 비스무레하게 잘 표현이 되는 편이다. 아무려면 '마끄도나르도'가 '맥도날드'만 하겠는가), 게다가 웬 줄임말을 그렇게 쓰는지 파스콘(パスコン)을 듣고 한번에 퍼스널 컴퓨터 즉 PC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꼭 필요한 이런 단어는 양반이다. 전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외래어를 축약까지 해가며 스스럼 없이 쓰는 그 열린마음들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테레비'라고 하면서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쓰지 않는 반면 일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축약된 외래어, 외국어를 방송이든 책이든 마구 써 댄다. 아마도 일본인들은 외래어와 외국어를 별로 구분하지 않는 것같다.

한국에서는 외래어와 외국어를 엄밀히 구분하는데, 요사이는 그 경계가 많이 희미해진 것 같기도 하다.(앙 선생님 때문인가.. 앙.. 즈질..)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별해야 하는 것은 외국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밝고 명랑한 사회 창달을 위해.. 퍽.. 퍼헉.. 그냥 그렇다는...

먼저, 외래어와 외국어를 좀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면서 한국에서 대체어 없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굳은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라디오, 버스, 택시 같은 말일 텐데, 애초에 한국어로 대체어를 만들지 않고 외국에서 온 말을 그대로 굳혀 쓰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말로 대체할 수 없으며 원어 발음에 크게 구애됨 없이, 굳어진 표기법 대로 쓰고 읽는 말들이다. 그에 반해 외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말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에서 쓸 필요도 없고 한국어로 대체가 가능한 말들이 이에 해당한다. 뷰티풀(beautiful), 딜레이(delay)와 같은 말이다. 얼마든지 한국말로 쓸 수 있고 굳이 외국어로 안 써도 되는 말이다.

가급적이면 외국어는 지양해야 한다. 외래어는 국어와 같이 쓰는 것이라 무방하다. 사실 지금은 국어에 포함되어 있는 한자도 원래는 외래어의 개념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굳어진 것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지금 너무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는 영어는 좀 자제해야 될 필요가 있다. 사실, 북한이 남한을 미국의 식민상태라고 까대는 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금융 등 거의 전반에 걸쳐 종속에 가까운 상태에 있는 이유도 있지만, 언어와 같이 표나는 부분에서 그 오염이 특히 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민족'이라고 정의할 때, 그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겉모습, 혈족, 역사적 체험의 공유, 그리고 언어가 있을 것이다. 남북한은 나머지 부분은 대체로 이질감이 없는데 언어에서 유난히 이질감이 심하다. 이것은 앞으로 통일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말이 다르다면 웬만해서는 잘 친밀감을 느끼기 힘든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 얘길 하니, 문득 배철수 형님이 떠오른다.(뭐,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그냥 친근하게 부르고 싶다.^ ^) 배철수 형님은 유난히 발음에 신경을 쓴다. 사실 팝음악 방송을 하는 DJ로서 발음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별나다고 할건 없겠으나 배철수 형님은 유난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듣기에도 그렇게 들린다. 그런데 배철수 형님은 너무 정확한 발음에 신경을 쓰는 나머지 그럴 필요가 없는 것까지 그러는 것 같다. 대개 노래 제목은 원래 외국어이니 가능한 원어에 가깝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 이름은 어차피 외래어에 속하는 것이라 너무 혀를 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한국어 발음이 가능한 대로 부르면 된다. 외래어는 어떤 걸 지칭하는지 알기만 하면 되지 꼭 같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언어마다 발성법이 달라서 똑같을래야 똑같을 수도 없다. 맨하탄이 뭘 뜻하는지만 알아들으면 되지 굳이 숨까지 끊어가며 '맨햍은'이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외래어와 관련해서 좀 아쉬운 것은, 한국에서는 외래어 표기에 대해 너무 무신경한 것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표준 외래어 규정 같은 것은 있는 모양인데 일반적으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단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그런 노력을 별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th'를 '스'로 할지 '드'로 할지 매우 헷갈린다. '토쿄'인지 '도쿄'인지, 심지어 '도꾜'인지 좀체 알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마구 써대긴 하지만 표기만큼은 거의 통일해서 쓰는 것 같다. 그게 원음에 가깝든 그렇지 않든 일단 정해진 표기대로 일정하게 쓴다는 것이다. 한글은 일본글자에 비하면 표기가능한 소리가 훨씬 많아서 비교적 유사하게 외래어를 표기할 수 있지만 통일이 되어있지 않아서 언어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분해서 쓰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닌데, 어쨌든 웬만하면 우리말로 쓰고 외래어는 표기법이 좀 정비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부기관, 지자체에서 아무생각 없이 'Hi Seoul' 이따위 짓거리를 하면 정말 답 안나오는 것이다. 'DreamBay MASAN'은 또 뭔 개뼉다귀인지.. 기본적으로 외국어 문자를 쓰는 것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바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론사 중에는 한겨레가 소신있게 이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굉장히 평가받을 일이다.

아무튼 한국사람의 입에서 한국어에 없는 발음이 튀어나온 다든지, 한글로 써진 문장에 외국어 글자가 괄호없이 그냥 써져 있다면 그건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외래어와 외국어를 잘 구분만 한다면 이와같은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득 생각나서 하는 얘긴데... 연전에 대통령직 인수위인가 하는 데서 위원장인지 뭔지 하는 작자가 '아린쥐'로 한번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이건 뭐 개그맨도 아니고) 뭐 어디 대학 교수질을 하는 양반인 모양인데, 어디서 잘못배우셨는지.. 한국사람이 왜 '아린쥐'라고 해야하는지를 난 통 모르겠다. 영어를 그렇게 잘 하시고 영어가 그렇게도 좋으시면 영어만 하는 나라에 가 사시든지. 왜 한국말 쓰는 나라에서 애매한 사람들을 실소케 하시는지.. 쯧,

그냥 길거리에서 만난 장삼이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일이지만 배웠다는 사람이, 그런 중요한 직책에 앉아서 그런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지껄여 대니 참 한심스럽고 낭패감만 가득할 뿐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할 말이 꼴린다'

외래어와 외국어만 좀 구분하자고요. 몰입까지는 안 해도 되니까.




▒사족▒▒▒▒▒▒▒▒▒▒▒▒▒▒▒▒▒▒▒▒▒▒▒▒▒▒▒▒▒▒▒▒▒▒▒▒▒▒▒▒▒▒▒▒▒▒▒▒
본 글에 실린 내용의 정확성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습니다.^ ^
소인 갈옥이는 국어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그냥 살아오면서 깨친 바를 적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용어를 비롯하여 내용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맞을 걸로 추정되는 상식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점 유의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틀린 부분이 있다면 기탄 없는 태클질로 소인을 가르쳐주시기 바라옵니다.
언제나 그렇듯, 악플질/태클질 적극환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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