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의 한글표기에 대해 좀 말해보려 한다. 뭐, 대개의 사람들이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이고, 심지어 말글로 먹고 사는 언론들 조차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그 '표기법'이란 것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의 말은 다 다르고, 글도 몇가지 종류가 된다. 그리고 나라마다 외국어를 자신들이 쓰기 좋게 바꿔서 일정하게 표기를 하고 발음을 하게 된다. 그것은 말이 나라나 혹은 민족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똑같이 발음할 순 없고, 더구나 글로 똑같이 쓴다는 것은 거의 불능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해지는 것이 이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표기법이 아직까지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물론 뭐 국립국어원 같은 데서 정한 규칙이 있겠지만 일관되게 적용되어 사용되지 않는 실정인 것이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것 같지만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위해서도 그렇고 타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표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뭐 그런 시시껍적한 것을 가지고 머리 아프게 자꾸 따지냐고 할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쉽고 간단한 예를 든다면, 우리의 중요한 전통음식 가운데 하나인 김치를 생각해 보자. '김치'를 알파벳으로 'Kimchi'로 표기할 것인가 'Kimuchi'로 표기할 것인가는 무척 중요하다. 서양인들이 볼 때 발음도 비슷하고 어차피 동양에서 온 것인데 뭔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없을 줄 안다. 왜냐면 'Kimchi'는 한국 것이고, 'Kimuchi'는 일본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원래 김치는 한국 것이니 한국의 표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김치는 일본 것이 되고 만다. 아무리 표기가 그렇더라도 어떻게 원조가 바뀌냐고? 지금이야 그렇겠지만 100년 200년 지나가면 그렇게 된다. 문화라는 건 어차피 태생적 원조라는 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먼저 보급시키고 정착시킨 쪽이 오리지널리티를 가져가게 된다. 서양인들이 'Kimchi'를 먹느냐 'Kimuchi'를 먹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Kimchi'를 먹으면 한국이 원조가 되고 'Kimuchi'를 먹으면 일본이 원조가 된다. 한국의 김치가 짝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암튼 이렇게 표기라는 건 중요한데, 오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기실 표기의 중요성이 아니라 표기법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규칙과 통일성 그리고 일관성에 관한 문제이다. 언어라는 것이 어차피 약속의 체계이므로 표기법에 있어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단어를 어떤 땐 이렇게 말했다가 또 어떤 땐 저렇게 말했다가 한다면 언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약속'의 체계가 무너지게 된다.
'Radio'를 '라디오'라고 하기로 했으면 반드시 라디오라고만 해야 한다. 물론 '래디오', '레이디오'라고 해도 알아는 듣는다. 말로 할때는 알아듣는 것(대화를 하는 그 순간의 현장성)이 일관성 보다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용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로 쓸 때는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어의 효율성을 깨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어라는 것이 '약속의 체계'라는 대전제를 깨게 되는 사태가 되는 것이다.
글로 쓸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말로 할 때도 가급적이면 정해진 규칙과 통일성 일관성에 맞는 말소리를 정해서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 한글은 매우 우수한 표기체계를 갖고 있어서 말글과 소리글의 차이가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어에서는 글로 정해 놓으면 거의 말로 쓸 때도 그대로 쓰면 된다.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참 답답할 따름이다. 왜 자꾸 'Radio'를 '래디오'라고 하는가. 그러면 좀 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라디오 진행자들이 나서서 이렇게 써 대니 참 딱하고 한심하다.
표기법의 통일성에 대해 좀더 들어가 보자. 영어 알파벳 A, B, C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는 일정하게 정해 놓는 것이다. 그리고는 실제 발음이 거기서 좀 벗어나더라도 그냥 통일해서 쓰는 것이 기본이다. 우리가 외국어 심지어 외래어를 도입해서 쓸 때는 편안하게 가져와 쓰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똑같이 발음을 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외국어에 대해 똑같이 발음할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편의를 위해 외국어를 가져와 쓰는 것이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어를 하며, 필요에 의해 몇몇 외국어를 가져와 한국말로 바꿔서 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똑같이 소리내려고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 얼마나 똑같이 표기하고 말하느냐 보다는 사실 얼마나 통일성 있고 일관성 있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난 축구를 별로 안 좋아 하기 때문에 잘 보진 않지만 가끔씩 뉴스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나는 것은 당체 'Ronaldo'가 호나우두인지 호날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혼용해서 쓰기도 하는 것인지 또 아니면 포르투갈 본토말과 브라질 말이 조금 다른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별 신경은 안 쓰는데(내 입으로 쓸 일이 별로 없으므로) 가끔씩 뉴스를 통해 나올 때면 문득 그 생각이 들어서 짜증스럽다. 도대체 왜 이런 것 정도를 해결을 해놓지 않는 것인지. 좋은 대학 나와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그 숱한 사람들은 다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청자들이 세상에 수백 수천개나 되는 언어들을 다 알아서 정확하고 통일성 있게 말을 할 수는 없으므로 대중적으로 많이 쓰는 말에 대해서는 언론들이 일정하게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일관되고 통일된 표기법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기본적으로 그 나라에서 쓰는 글을 기준으로 1:1로 대응이 되도록 하면 크게 오류가 없다. 그 말은, 글로 적을 때는 실제 소리의 유사성보다는 글로 적었을 때의 통일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Los Angeles를 아무리 비슷하게 발음하려고 해봐야 무용한 짓이다. 그냥 알파벳 표기의 원칙아래 가능한 소리값을 기준으로 해서 통일된 한글로 표기하면 그만이다. 이것을 만약 '로스앤젤레스'라고 하기로 했으면 '로스앤제레스', '로스엔젤리스' 등으로는 표기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데, Los Angeles처럼 많이 알려지고 비교적 발음도 명확한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그 숱한 어려운 말, 어려운 지명, 잘 안 알려진 단어들에 이르면 이 통일성과 일관성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불편을 겪지 않으려면 쉽고 간단한 것부터 표기법의 원칙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표기법의 통일성과 일관성에 관해 내가 다른 언어는 잘 모르니 예를 못들겠고, 좀 아는 일본어를 기준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일본어처럼 소리값이 몇개 안 되는(찍 해봐야 50여개 남짓하다) 언어에도 이 통일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東京을 도대체 토쿄라고 읽어야 될지, 토오쿄오라고 읽어야 될지, 도쿄라고 읽어야 될지, 도꾜라고 읽어야 될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東京는 일본 고유문자인 히라가나로 'とうきょう'라고 쓰고 알파벳으로는 'Tokyo'라고 쓴다. 이것을 정확하게 한글로 표기하자면 '도오쿄오'가 아마도 가장 비슷할 텐데, 이것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지금은 아마도 외국어 표기에 있어서 장단음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 것 같은데, 따라서 '도쿄'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첫음 東(とう)가 사실은 일본어로 청음이라서 이것을 한글로 바꿀 때는 '토'가 되어야만 한다. 일본어에는 청음과 탁음이 있는데(한국어의 ㄱ과 ㅋ이 다른 것처럼), 東의 발음은 とう(토오)로서 청음이다. 일본어에는 どう(도오)라는 탁음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혼용해서 써서는 안 된다. '토'인지 '도'인지 정확하게 구분을 해서 표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파벳으로 표기할 때도 반드시 'Tokyo'라고 쓰지 'Dogyo'라고 쓰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대구를 예전에는 'Taegu'로 표기하다가 지금은 'Daegu'로 바뀌었다. 옳게 바뀐 것이다. ㄷ을 알파벳 'T'로 하면 한국어의 ㄷ과 ㅌ의 표기가 겹쳐버린다. 대구시와 태백시는 명백히 한국어에서 음가가 다른 것인데 알파벳으로는 같은 음이 되어버리는 촌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얼마나 비슷하게 발음을 할 수 있느냐 또는 얼마나 쉽게 할 수 있느냐 만큼 표기의 통일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한국에 태구시가 있었으면 어떡할 텐가. '통도사'와 '동도사'가 똑같은 알파벳 글자로 표기된다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아무튼, 東京는 '토쿄'가 가장 근사치에 가깝고 발음의 통일성도 지켜지는 무난한 한글 표기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당장 저녁 9시 뉴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공영방송에서조차 '도쿄 특파원'이라고 쓴다. 이것, 시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물론 변명은 있을 것이다. 실제 발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건데, 실제발음보다 글로 써서 표기할 때는 통일성과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 분별력은 언어의 주요한 덕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본어에서 청음이 단어의 첫머리에 올 때는 탁음에 가깝게 발음을 한다. 그래서 '타', '토', '쿠' 등과 같은 청음이 단어의 처음에 올 때는 '다', '도', '구'와 비슷하게 발음된다. 정말 흔한 일본 이름 田中은 '타나카'인데 '다나카'에 가깝게 들린다. 그래서 흔히 '다나카'라고들 한다. 그런데 문제는, 中田일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中田은 '나카타'라고 읽는데 그럼 이것을 '나카다'라고 읽어야 하나? 이것은 넌센스다. 田이 'た(타)'로 읽힐 때는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타'로 읽히고 표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통일성이고 일관성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표기는 온통 엉망이 되고, 장날 시장바닥처럼 된다.
난 야구를 좋아하므로 야구 선수 중에 예를 하나 들겠다. SK와이번스에 '카도쿠라'라는 선수가 있다. 검색해보니 '門倉'이라고 쓴다. 히라가나로는 'かどくら'. 그런데 흔히 방송중계하는 캐스터나 해설자들이 '가도쿠라'라고들 한다. '가도구라'라고 해서 구라쟁이로 만들지 않는 것이 참 다행이다. 근데 정말 기절초풍할 일은, 국민야구해설자 허구연 해설위원이 뻑하면 '가또꾸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답도 안 나오는 엉터리 발음이다. 나는 허구연이 '가또꾸라'라고 발음을 하게 된 원인이 기본적으로 표기에 대한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카도'인지 '가도'인지 모호하니 한발 더 나가서 '가또'가 돼버린 것이다. 웃기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어는 음가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표기도 단순하고 쉽게 바꿔서 쓸 수 있다. 일본어를 몰라서 정 어렵다면 일본애들이 영어로 표기한 대로만 한글로 대치시켜 바꿔도 큰 문제가 없다. 야구선수 門倉는 알파벳으로 'Kadokura'라고 쓰기 때문에 '카도쿠라'라고 하면 된다. 축구선수 中田는 'Nakata'로 쓰기 때문에 '나카타'로 하면 된다. 그리고 田中는 반드시 'Tanaka' 로 쓰기 때문에 '다나카'가 아니라 '타나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훨씬 통일되면서도 쉽고 편한 방법이다. 왜들 자꾸만 어렵게 쓰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무지한 백성이 쉽고 편하게 쓰게 하기 위해서 한글을 만드셨다고. 이 '쉽고 편한' 원칙은 외국어 및 외래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국립국어원과 일선 방송사, 그리고 온오프라인의 각종 언론사들부터라도 이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정리된 표기법의 원칙을 확립하고 반드시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린 백셩이 제 뜯을 시러펴디 못한 채, 날로 불뼌함'만 가중될 것이다. 세종대왕의 고심이 깊어진다는 얘기다. 좋은 글을 만들어 줬는데 왜 효과적으로 쓰지 않는 것인지 한탄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 좀 개선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말은 다 다르고, 글도 몇가지 종류가 된다. 그리고 나라마다 외국어를 자신들이 쓰기 좋게 바꿔서 일정하게 표기를 하고 발음을 하게 된다. 그것은 말이 나라나 혹은 민족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똑같이 발음할 순 없고, 더구나 글로 똑같이 쓴다는 것은 거의 불능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해지는 것이 이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표기법이 아직까지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물론 뭐 국립국어원 같은 데서 정한 규칙이 있겠지만 일관되게 적용되어 사용되지 않는 실정인 것이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것 같지만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위해서도 그렇고 타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표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뭐 그런 시시껍적한 것을 가지고 머리 아프게 자꾸 따지냐고 할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쉽고 간단한 예를 든다면, 우리의 중요한 전통음식 가운데 하나인 김치를 생각해 보자. '김치'를 알파벳으로 'Kimchi'로 표기할 것인가 'Kimuchi'로 표기할 것인가는 무척 중요하다. 서양인들이 볼 때 발음도 비슷하고 어차피 동양에서 온 것인데 뭔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없을 줄 안다. 왜냐면 'Kimchi'는 한국 것이고, 'Kimuchi'는 일본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원래 김치는 한국 것이니 한국의 표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김치는 일본 것이 되고 만다. 아무리 표기가 그렇더라도 어떻게 원조가 바뀌냐고? 지금이야 그렇겠지만 100년 200년 지나가면 그렇게 된다. 문화라는 건 어차피 태생적 원조라는 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먼저 보급시키고 정착시킨 쪽이 오리지널리티를 가져가게 된다. 서양인들이 'Kimchi'를 먹느냐 'Kimuchi'를 먹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Kimchi'를 먹으면 한국이 원조가 되고 'Kimuchi'를 먹으면 일본이 원조가 된다. 한국의 김치가 짝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암튼 이렇게 표기라는 건 중요한데, 오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기실 표기의 중요성이 아니라 표기법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규칙과 통일성 그리고 일관성에 관한 문제이다. 언어라는 것이 어차피 약속의 체계이므로 표기법에 있어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단어를 어떤 땐 이렇게 말했다가 또 어떤 땐 저렇게 말했다가 한다면 언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약속'의 체계가 무너지게 된다.
'Radio'를 '라디오'라고 하기로 했으면 반드시 라디오라고만 해야 한다. 물론 '래디오', '레이디오'라고 해도 알아는 듣는다. 말로 할때는 알아듣는 것(대화를 하는 그 순간의 현장성)이 일관성 보다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용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로 쓸 때는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어의 효율성을 깨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어라는 것이 '약속의 체계'라는 대전제를 깨게 되는 사태가 되는 것이다.
글로 쓸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말로 할 때도 가급적이면 정해진 규칙과 통일성 일관성에 맞는 말소리를 정해서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 한글은 매우 우수한 표기체계를 갖고 있어서 말글과 소리글의 차이가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어에서는 글로 정해 놓으면 거의 말로 쓸 때도 그대로 쓰면 된다.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참 답답할 따름이다. 왜 자꾸 'Radio'를 '래디오'라고 하는가. 그러면 좀 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라디오 진행자들이 나서서 이렇게 써 대니 참 딱하고 한심하다.
표기법의 통일성에 대해 좀더 들어가 보자. 영어 알파벳 A, B, C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는 일정하게 정해 놓는 것이다. 그리고는 실제 발음이 거기서 좀 벗어나더라도 그냥 통일해서 쓰는 것이 기본이다. 우리가 외국어 심지어 외래어를 도입해서 쓸 때는 편안하게 가져와 쓰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똑같이 발음을 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외국어에 대해 똑같이 발음할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편의를 위해 외국어를 가져와 쓰는 것이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어를 하며, 필요에 의해 몇몇 외국어를 가져와 한국말로 바꿔서 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똑같이 소리내려고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 얼마나 똑같이 표기하고 말하느냐 보다는 사실 얼마나 통일성 있고 일관성 있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난 축구를 별로 안 좋아 하기 때문에 잘 보진 않지만 가끔씩 뉴스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나는 것은 당체 'Ronaldo'가 호나우두인지 호날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혼용해서 쓰기도 하는 것인지 또 아니면 포르투갈 본토말과 브라질 말이 조금 다른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별 신경은 안 쓰는데(내 입으로 쓸 일이 별로 없으므로) 가끔씩 뉴스를 통해 나올 때면 문득 그 생각이 들어서 짜증스럽다. 도대체 왜 이런 것 정도를 해결을 해놓지 않는 것인지. 좋은 대학 나와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그 숱한 사람들은 다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청자들이 세상에 수백 수천개나 되는 언어들을 다 알아서 정확하고 통일성 있게 말을 할 수는 없으므로 대중적으로 많이 쓰는 말에 대해서는 언론들이 일정하게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일관되고 통일된 표기법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기본적으로 그 나라에서 쓰는 글을 기준으로 1:1로 대응이 되도록 하면 크게 오류가 없다. 그 말은, 글로 적을 때는 실제 소리의 유사성보다는 글로 적었을 때의 통일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Los Angeles를 아무리 비슷하게 발음하려고 해봐야 무용한 짓이다. 그냥 알파벳 표기의 원칙아래 가능한 소리값을 기준으로 해서 통일된 한글로 표기하면 그만이다. 이것을 만약 '로스앤젤레스'라고 하기로 했으면 '로스앤제레스', '로스엔젤리스' 등으로는 표기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데, Los Angeles처럼 많이 알려지고 비교적 발음도 명확한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그 숱한 어려운 말, 어려운 지명, 잘 안 알려진 단어들에 이르면 이 통일성과 일관성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불편을 겪지 않으려면 쉽고 간단한 것부터 표기법의 원칙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표기법의 통일성과 일관성에 관해 내가 다른 언어는 잘 모르니 예를 못들겠고, 좀 아는 일본어를 기준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일본어처럼 소리값이 몇개 안 되는(찍 해봐야 50여개 남짓하다) 언어에도 이 통일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東京을 도대체 토쿄라고 읽어야 될지, 토오쿄오라고 읽어야 될지, 도쿄라고 읽어야 될지, 도꾜라고 읽어야 될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東京는 일본 고유문자인 히라가나로 'とうきょう'라고 쓰고 알파벳으로는 'Tokyo'라고 쓴다. 이것을 정확하게 한글로 표기하자면 '도오쿄오'가 아마도 가장 비슷할 텐데, 이것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지금은 아마도 외국어 표기에 있어서 장단음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 것 같은데, 따라서 '도쿄'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첫음 東(とう)가 사실은 일본어로 청음이라서 이것을 한글로 바꿀 때는 '토'가 되어야만 한다. 일본어에는 청음과 탁음이 있는데(한국어의 ㄱ과 ㅋ이 다른 것처럼), 東의 발음은 とう(토오)로서 청음이다. 일본어에는 どう(도오)라는 탁음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혼용해서 써서는 안 된다. '토'인지 '도'인지 정확하게 구분을 해서 표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파벳으로 표기할 때도 반드시 'Tokyo'라고 쓰지 'Dogyo'라고 쓰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대구를 예전에는 'Taegu'로 표기하다가 지금은 'Daegu'로 바뀌었다. 옳게 바뀐 것이다. ㄷ을 알파벳 'T'로 하면 한국어의 ㄷ과 ㅌ의 표기가 겹쳐버린다. 대구시와 태백시는 명백히 한국어에서 음가가 다른 것인데 알파벳으로는 같은 음이 되어버리는 촌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얼마나 비슷하게 발음을 할 수 있느냐 또는 얼마나 쉽게 할 수 있느냐 만큼 표기의 통일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한국에 태구시가 있었으면 어떡할 텐가. '통도사'와 '동도사'가 똑같은 알파벳 글자로 표기된다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아무튼, 東京는 '토쿄'가 가장 근사치에 가깝고 발음의 통일성도 지켜지는 무난한 한글 표기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당장 저녁 9시 뉴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공영방송에서조차 '도쿄 특파원'이라고 쓴다. 이것, 시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물론 변명은 있을 것이다. 실제 발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건데, 실제발음보다 글로 써서 표기할 때는 통일성과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 분별력은 언어의 주요한 덕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본어에서 청음이 단어의 첫머리에 올 때는 탁음에 가깝게 발음을 한다. 그래서 '타', '토', '쿠' 등과 같은 청음이 단어의 처음에 올 때는 '다', '도', '구'와 비슷하게 발음된다. 정말 흔한 일본 이름 田中은 '타나카'인데 '다나카'에 가깝게 들린다. 그래서 흔히 '다나카'라고들 한다. 그런데 문제는, 中田일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中田은 '나카타'라고 읽는데 그럼 이것을 '나카다'라고 읽어야 하나? 이것은 넌센스다. 田이 'た(타)'로 읽힐 때는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타'로 읽히고 표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통일성이고 일관성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표기는 온통 엉망이 되고, 장날 시장바닥처럼 된다.
난 야구를 좋아하므로 야구 선수 중에 예를 하나 들겠다. SK와이번스에 '카도쿠라'라는 선수가 있다. 검색해보니 '門倉'이라고 쓴다. 히라가나로는 'かどくら'. 그런데 흔히 방송중계하는 캐스터나 해설자들이 '가도쿠라'라고들 한다. '가도구라'라고 해서 구라쟁이로 만들지 않는 것이 참 다행이다. 근데 정말 기절초풍할 일은, 국민야구해설자 허구연 해설위원이 뻑하면 '가또꾸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답도 안 나오는 엉터리 발음이다. 나는 허구연이 '가또꾸라'라고 발음을 하게 된 원인이 기본적으로 표기에 대한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카도'인지 '가도'인지 모호하니 한발 더 나가서 '가또'가 돼버린 것이다. 웃기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어는 음가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표기도 단순하고 쉽게 바꿔서 쓸 수 있다. 일본어를 몰라서 정 어렵다면 일본애들이 영어로 표기한 대로만 한글로 대치시켜 바꿔도 큰 문제가 없다. 야구선수 門倉는 알파벳으로 'Kadokura'라고 쓰기 때문에 '카도쿠라'라고 하면 된다. 축구선수 中田는 'Nakata'로 쓰기 때문에 '나카타'로 하면 된다. 그리고 田中는 반드시 'Tanaka' 로 쓰기 때문에 '다나카'가 아니라 '타나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훨씬 통일되면서도 쉽고 편한 방법이다. 왜들 자꾸만 어렵게 쓰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무지한 백성이 쉽고 편하게 쓰게 하기 위해서 한글을 만드셨다고. 이 '쉽고 편한' 원칙은 외국어 및 외래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국립국어원과 일선 방송사, 그리고 온오프라인의 각종 언론사들부터라도 이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정리된 표기법의 원칙을 확립하고 반드시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린 백셩이 제 뜯을 시러펴디 못한 채, 날로 불뼌함'만 가중될 것이다. 세종대왕의 고심이 깊어진다는 얘기다. 좋은 글을 만들어 줬는데 왜 효과적으로 쓰지 않는 것인지 한탄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 좀 개선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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