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역기를 사서 근육운동을 하고, 5월 초부터는 아침에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고 몸도 좋아지는 것 같고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웠다. 기분이 좋아져서 러닝복도 사고 러닝화도 사고 가을 즈음에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려고 스케줄까지 다 짰다. 건강하고 활기찬 앞날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런데 젠장..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았나. 종내 사단이 나고 말았다. 큰맘 먹고 러닝화까지 사서 몇번 뛰었을까, 갑자기 오른발 아킬레스건 쪽이 아팠다. 하루 이틀 쉬면 괜찮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인터넷을 좀 뒤적거려보니 딱 '아킬레스건염'이다. 갑자기 무리하게 경사 같은데를 뛰면 힘줄에 무리가 가서 염증이 생긴다는 게다. 이런 된장..
그게 벌써 3주전이다. 처음엔 걸을 때마다 뜨끔 뜨끔 하더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길래 그냥 버텼다. 그런데 생각보다 회복이 더디다. 그냥 병원에 가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오래 끌줄 알았으면 진즉에 제대로 치료를 받는 건데 잘못했다. 거기다 오른쪽 오금 있는 부분의 힘줄도 손상이 됐는지 저릿하게 계속 아프다. 오른쪽 발은 완전 맛탱이가 가버렸다. 에고...
3주 동안이나 개점휴업하고 있으니 환장하겠다. 이거 뭐 좀 처량한 기분도 들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내가 그리 무리하게 열심히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이제 내 몸이 이 정도 운동량도 버티지 못할 만큼 삭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로 착잡했다.
아닌게 아니라, 실상 운동이 그렇게 빡센건 아니었다. 그저 1시간 정도 달린 건데, 다만 완만한 오르막이라 근육에 무리가 많이 갔던 것 같다. 20대 한창 나이도 아니고,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니 탈이 나버린 것인 지도 모른다. 이젠 몸에 맞춰가면서 운동을 해야하는 나이인가 보다. 쩝스..
하지만.. 여기까지 약과에 불과했다.
이틀 전, 역기를 드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달릴 수 없게 된 이후로 근육운동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냥 무리가 안될 정도로 가볍게 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근육운동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할 때 그런 게 아니라 앉았다 일어나거나 누워서 있을 때 어지럼증이 생기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세를 바꾸면 갑자기 핑 돌면서 몇 초간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평시에는 크게 어지럽진 않은데 약간 감이 둔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을래나.. 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하루가 지났지만 그대로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덜컥 겁이 났다. 몸에 뭔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하고 온갖 잡생각이 다 났다. 그냥 몸이 아픈 거면 대충 어떻게 되겠다 하는 감이라도 올 텐데, 이건 뭐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현기증이 나니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거 뭐 하나 걸려도 제대로 걸린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공포감이었다.
근데 이게 여름에 땡뼡에 오래 서 있거나 할 때 생기는 현기증하고는 좀 달랐다. 마치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어지럽고 순간적으로 평형감각이 없어졌다. 갑자기 머리가 핑그르르 도니까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더듬게 된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을 내가 하게 된 것이다. 평형감각이 없어지니까 본능적으로 뭘 잡게 된다.
아무래도 뭔 사단이 났다 싶어서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지니까 '이석증'이라는 증상하고 딱 맞았다. 평형감각을 유지시켜주는 반고리관에 문제가 생긴 뭐 그런 것이란다. 일단 이비인후과를 가면 되는 모양이다. 시간 끌 것 없이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갔다.
뒤로 눕히고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석증이 맞다고 한다. 전정고리관인가 뭔가 하는 곳에 돌멩이들이 있는데 그게 잘못 빠져나와서 엉뚱한 데로 돌아다니면 평형상태를 잘못 인지해서 자꾸만 신경을 자극하게 되면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치료방법은 없고 그냥 안정을 취하란다.
최근에 뭔 몸에 충격을 받은 일 있냐고 하길래 그냥 좀 운동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건 없다고 했더니 운동하지 말란다. 갑자기 운동을 하면 생길 수 있는 흔한 병이라고. 테니스 같은 걸 하면 종종 발생한다나 뭐라나. 젠장.. 역시 운동이 사단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몸을 심하게 움직이는 일을 하면 고리관 안의 돌멩이가 빠져나와서 이석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 가만 생각해보니, 벤치프레스를 하면 누워서 힘을 쓰게 되고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서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게 되니까 그렇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뭐 뛰지도 못하고 이젠 근육운동도 못하고 꼼짝없이 자리보전하게 생겼다.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거 뭐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더더욱 나를 우울하게 하는 건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병하는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퇴행성.. 퇴행성.. 이런 젠장..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건강 좀 챙기려고 시작한 건데 완전히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었다. 그냥 가만 있었으면 본전은 찾았을 텐데 설치다가 병신된게 아닌가 자책감만 든다.
이젠 이 정도 운동에도 탈이 나는 나이가 된 것인가.. 이제 운동도 조심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발전이라는 것이 없이 현상유지만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끝도 없이 우울해진다.
그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은데 스산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왠지 허한 기분이 스믈스믈 차올라 온다. 참..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는데, 여자들은 폐경이 되면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지.. 암튼 기분 좀 우울하다.
일단 타 온 약은 먹으면서 좀 안정을 취해야겠다. 어쨌든 회복은 된다고 하니까 절망할 필요는 없고,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다시 조금씩 운동을 시작해 볼 요량이다. 여기서 주저 앉을 순 없으니까. 사실 좀 절박한 기분이 든다. 진짜로 내 몸이 퇴행된다는 걸 인정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그냥 좀 건강하게 살자는 것 뿐인데 그것조차 안 될 리는 없으니 괜히 풀죽어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운동 안 하다 갑자기 해서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힘을 내야지.. 뭐 특별히 심각한 탈이 난 건 아니니 지나치게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그래도 '이거 한방에 골로 가는 건 아닌가'하고 불길하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운동 부작용 쪽이 훨씬 낫지 않는가. 남들도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하니 저으기 위안도 좀 된다. 쩝..
세상에 참, 만만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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