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삐딱이라서, 괜히 삐딱한 소리 좀 하려고 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은 암만해도 내 취향은 아닌 데다가, 좋은게 좋은거.. 뭐 이런 것도 별로고.
물이든 석유든, 우리에게 주어진 얼마 안되는 자원을 아껴 써야하고, 불필요한 낭비는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에 100% 동의한다. 나 자신 빈한하게 살고있을 뿐 아니라, 여유 있다고 해서 불필요한 낭비를 방치하는 것은 매우 재수없는 악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익성 영상은 못내 불편하다. 뭐, 내가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나와 상관없는 얘기라서가 아니다. 앞에 말했다시피 나는 지극히 서민스러운 생활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좋은, 훌륭한 얘기에 동감치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괜시리 시큰둥한가. 나도 처음엔 그냥 '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하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얘길 좀 해보려고 한다. 찜찜한 건 털어야 하고, 시접한 거라도 괜히 집적거려 보아야 속이 개운한 못된 천성도 한몫 한 탓일 테다.
물론 이건 망구 생각 짧은 내 견해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틀린 것일 수도 있다. 뭐 그렇다면 내 모자람의 탓일 것이고.. 어쨌든, 어디가 불편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먼저, 그림따라 흘러가버린 나레이션 내용을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뭄 걱정 모르는 철호의 30분 목욕물은,
남해에 사는 철호 가족이 애타게 기다리는 한달치 식수입니다.
1년만에 전국 댐 수위 30% 감소 (자막)
가뭄 피해 없는 강우 씨의 한 시간 세차 물은,
태백에 사는 강우 씨 마을 주민 백명이 나눠야 하는 생활수입니다.
전국 814개 마을 12만명 식수난 (자막)
2009년 최악의 가뭄 예상 (자막)
이제 가뭄으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눈물대신 웃음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물과 생명이 흐르는 대한민국, 희망은 마르지 않습니다.
물이 모자라지 않는 지역에서 목욕과 세차로 함부로(?) 쓰는 물이, 가뭄으로 고통받는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삶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귀중한 물임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자막내용으로 올해는 최악의 가뭄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풍부하다고 해서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맞는데... 그런데 이 영상의 내용을 가만히 보면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논리의 비약이 있다. 그것은 '물이 풍부한 지역의 사람들이 물을 아끼면 과연 물이 부족한 곳에 더 많은 물이 공급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과연 그러한가.
문제는, 물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공급되는 시스템이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가뭄이 되면 큰 도시에서 떨어져 있거나 상수원에서 먼 지역은 순식간에 물이 모자라게 된다. 하지만 만약 물공급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있다면 전 국민이 같이 어려울 순 있어도 일부지역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는, 물이 공급되는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원활한 대비책이 부재한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내가 물을 아껴서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물이 공급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불편을 감수할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이 땅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계속 이와 같은 공익광고를 봐야 한다면 나는 아무 죄없이 괜히 불편한 심정에 휩싸이게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빼고. 혼자 잘먹고 잘살면 되는 사람들..)
한국수자원공사는 왜 애매한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가. 그게 과연 나의, 나와 같은 소시민들의 과소비 탓인가. 내가 물 소비를 줄이면 물이 부족한 곳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이거 뭔가 잘못된 것같다. 나의 물 씀씀이와 물부족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국가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아닌가? 대기업을 위해 국가방어체계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비행장 활주로를 변경하도록 바꿔서 초고층빌딩을 허가해주고, 난데없이 강 정비한다면서 은근슬쩍 강바닥 파서 뭔 운하만드는데 골몰하지 말고,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이 일이 아닌가 말이다. 내 말은, 엉뚱한 데 돈을 쓰지 않으면, 물부족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괜히 아무 죄없는 국민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고도 말이다.
국가는, 수자원공사는 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않고 어먼 국민들의 불편을 강요하는가. 세금내고 이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일한 국가적 혜택을 받아야할 권리가 있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것이 국가의 보호로부터 소외될 하등의 이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이 있는 이유로, 그와 별무관한 사람이 괜한 마음고생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꼭이 이해하려 한다면 아마 전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국가도 어디서 돈이 툭 하고 떨어져서 운영하는 건 아닐테니, 얼마 안되는 돈으로 쪼개 쓰려다 보면 물부족 문제에만 예산을 투입할 수 없을 테다. 그러니 국민들이 조금씩 아껴쓰면 어디선가 돈이 남을 테고, 그러면 쬐끔이라도 수자원관리에 더 예산이 투입될 수 있을지 모른다.
뭐 굳이 이해하려면 그렇단 얘기다. 과연 짧은 공익광고를 보면서 거기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그냥 좀 알기 쉽게 가면 되었을 테다. 괜시리 이런 오해 유발하지 말고 간단히 호소할 수 있었을 테다. 왜 굳이 물쓰는 것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불필요한 켕김을 불러일으키는지 나는 그것이 심히 못마땅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나를 불편하게 하면 괜시리 부아가 치미는 것이다.
제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을 쥐어짜는 거, 이젠 좀 지양했으면 한다. 10년 전,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닥쳤을 때,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었다. 나라가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자들은 터럭 끝만큼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살아온 국민들이 금가락지 은가락지 마디 굵은 손가락에서 빼가며 겨우 나라를 건사했다. 나는 그런 '필요치 않게 아름다운' 모습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았더랬다. 정녕 그랬다. 뼈에 사무치도록.
국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제발 국민에게 전가하지 말아달라. 아픔의 나눔은 얼마든지 하고있고, 할 생각이 있다. 그러니 국가는 국가가 해야될 일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 엉뚱한 거 하지말고. 국민들은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다만 국가가 사고친 것을 매번 국민이 뒷수습을 해야하기에 피곤할 뿐이다. 올해도 뭔 재난이 닥치면 또다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릴 것이다. 한 해도 안 그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과연 그게 당연한 것일까?... 한국인들은 인정이 많고, 어려울 때 서로 잘 돕고, 힘들수록 더 강해지는 민족이라서,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그럼 국가는, 국가는 뭐하는데.
이젠 한국사람들도 할 말은 좀 하고 살았으면 한다.
"나 있잖아요, 이거 좀 불편하거든요. 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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