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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생각하며

치약을 통해 깨닫는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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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 치약이 바짝 말랐다. 며칠 전부터 그랬다. 앞뒤로 다 발라먹은 생선뼈다구처럼 휑한 모습이다. 그런데 여전히 쓰고 있다. 온 힘을 모아 1회분을 짜내고 치카치카하다가 문득 치약을 통해 몇가지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별 볼것 없는 말라빠진 치약을 통해 깨닫는 삶의 이치라니... 난데없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이나마 대충 엮어서 포스팅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습관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당장은 귀찮고 사소하지만 나중에 그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있다. 어릴 때 아무 뜻도 모르고 무작정 암송한 고전 구절들이 나중에 큰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주게 되더라는 도올 선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살다보면 꼭이 해야하나 싶은 구찮은 것들이 간혹 있는데, 그중에 무척 중요한 것이 바로 이를 닦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에는 습관이 되어서 이를 닦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는데, 군대 갔다온 이후 이를 안 닦고도 잘 수 있게 되어서 그후 이 닦는 습관이 들쭉날쭉하게 되어버렸다. 근데 이게 참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그 습관의 중요성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다. 왠만하면 귀찮더라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잇몸이 부실해지고, 딱딱한 것을 깨물때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아, 이런 제기럴..' 하는 탄식이 절로 나는 것이다. 살면서 꼭이 필요한 것은 습관을 만들고, 왠만하면 그 습관을 버리지 않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꺾어지면 금방이다.
인생... 꺾어진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는데, 좋은 시절 대충 다간 것은 분명해보인다. 뭐, 좋은 시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을 것 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가슴 속으로 불어오는 그 휑한 바람소리는 정말이지 지랄같다.
뭘 하다보면 늘 절반을 넘기가 힘들지, 반이 꺾어지고 나면 참 금방이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치약도 마찬가지다. 새놈을 까서 쓰기 시작할 때는 줄어드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데, 반 정도 썼다싶으면 금세 홀짝 말라있기 일쑤다. 이넘 참, 누가 우리 집에 와서 쓰고 가는 것도 아닐 텐데... 남은 양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암튼 반절 꺾어지고 나면 참 금방이다.
인생도 그런 것인지... 문득 이 닦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넘이 과연 누구인가 낯설어지기도 하고. 에이~ 그러면 안되잖아. 떨쳐버려야지. 후다닥 물을 헹구고 뛰쳐나오는 옹색한 뒷모습이란.

불가능한 것은 없다.
치약이 납작해져도, 밑에서부터 쭉쭉 긁어서 올리면 몇번을 더 쓸 수 있다. 단,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살면서 그다지 자주 있지 않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때가 이런 허덥한 일이라니, 남루한 일상에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치약을 다 쓰게 되면 꼭 이렇게 집착을 하게 된다. 대기 중인 새 치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이상하다. 나만 그런가 하면 뭐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치약 깨끗하게 짜주는 발명품을 만든 사람도 있다하니.
어쨌든, 이렇게 허덥한 일에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면 문득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제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짜 써도, 그 다음에 한번 더 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손톱이 하얗게 질리고 손끝 뿐만아니라 어깨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최선을 다 하면 '한번 더'의 축복이 있다. 꼭 있다. 할렐루야~ 불가능이란 없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것이 다가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절정의 상태에 도달했을 때, 침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마지막 1%의 집중력이 판을 그르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 했다면, 이왕이면 마무리도 잘 되어야 좋은 것이다. 더구나 그 1%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될 경우에는 말이다.
초내공을 발휘해 기적의 1회분을 짜냈을 때, 희열과 함께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손의 힘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다시 쏙 들어가버리고, 다시 한번 그와 같은 힘을 내기에는 이미 소모된 에너지가 너무 커 다시는 그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에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조심스레 한손을 빼 치솔을 잡고 그넘을 솔 위에 사뿐이 올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때, 한순간의 방심으로 그만 그 피같은 한조각의 치약이 바닥에 떨어져 버릴 때가 있다. 아... 그 순간의 허무함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온 몸의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고 싶어진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고.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저 하염없이 바닥에 떨어진 치약 한조각을 바라볼 뿐. 사실 그냥 새치약 꺼내 쓰면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의 상실감은, 한 3초 동안은 대학입시에 떨어진 것과 못지 않다.^ ^ 
집중력, 집중력이다. 최선을 다한 것이 좋은 결과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내가 원한 만큼만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욕심을 금물이다. 욕심은 평상심을 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