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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 모음 (2005년)

가거라 38선. 가거라 386..


한때.. 그렇다, 한때 나는 그 386이란 사람들을 부러워 했었다. 얼마나 좋은가. 시대를 나누는 한 상징이 되었으니. 하지만 나는 결코 386과 같은 폼나는 이름을 가진 세대가 될 수 없었다. 낀 세대라고 할까.. 80년대 생과 같은 발랄함과 386세대와 같은 진지함이 생래적으로 주어지지않는 어중간한 세대였던 것이다.

개같은 세상을 보았으되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고(중고등학생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의 자유는 대학생들의 것이었으니까..) 그 자유가 생길 때 쯤엔 그런 울분이 별무소용인 때가 되어있었다. 武勇이 舞踊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시대를 스쳐지나(-.-;) 왔다.


386.... 암튼 그들은 한때 세상을 지탱할 힘이었다. 그리고 극히 최근까지도 그들 중 일단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현실화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호감 마저도 모조리 걷어낼 때가 된 것 같다. 김민새의 변질은 그 개인의 자질 탓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엔 뭔가 더 깊은 세상사의 이치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최근 송영길, 임종석.. 등등,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에 있던 386들 마저도 정치역학의 소용돌이 속에, 낱낱이 '기특권층으로의 커밍아웃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나머지 호감을 마저 걷어내야 했던 것이다.


속이 불편하다. 왜 그리됐을까. 노무현이 개혁과 수구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듯이 유시민이 시대의 당위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던 것일까...

누군가 얘기했듯이 유시민이라는 '시대의 리트머스'에 386이라는 허울이 남김없이 테스트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보게 되었다.

386 그들은 왜 '시대가 요구한 길'을 버리고 '자신들이 믿는 길'을 선택했을까. 그들은 왜 각주구검의 우를 범했을까. 이즈음 나는 이 화두를 머리맡에 걸게 되었다. 얄구진 모모당의 당의장경선이 내 머리를 어지럽힌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결정적인 건, 그들 386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그들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게 차이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을 땐 누구나 정의로울 수 있다. 아니, '정의로울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학생 때는 의로움에 한몸 내던질 수 있는 것이다. 이상만 따라준다면 현실은 언제나 Go! 깃발들고 앞으로..


하지만  386의 가벼움은 딱 거기까지이다. 세상의 이치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다. 그들의 의로움은 가진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켜야할 현물자산(금력,권력)이 없고 숭고한 이상만 있는 자들에게 '의로움'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가진 자'가 되었다. 뭔가 지킬 게 있어진 것이다. 그들에게는 돈도 생겼고 권력도 생겼고 명예도 생겼다. 뭐든 지킬 게 있어졌다는 것은 왠만한 '불의함'에는 양심적,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게 진화(변절)되었다는 뜻이다. 이른바 '기득권의 생리'이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타도하려고 했던 대상이 된 것이다.

이게 무엇인가. 그들은 어디서 오류가 생긴 것인가. 그들의 열정과 이상은 지금도 유효한 가치들인데, 그들은 어디서 발을 잘못 디딘 것인가.

허다한 운동권 영웅들을 다 제치고 노무현이 시대의 이상을 실현한 것, 그리고 지금도 왠만한 현역 정치인들 중에 손꼽을 정도의 진보성과 개혁성을 보지하고 있는 것은 그 삶의 족적이 386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개뿔도 없을 때 홀가분하게 운동(스포츠)하듯이 사회개혁에 나선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가진자로서(변호사였음. 다 알듯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사회개혁에 투신했다는 데 있다.

가진 것을 버리고 나선 사람은 끝까지 순수할 수 있는 것이고, 가질게 많은 사람은 '있음'의 유혹에 쉬 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순수함을 끝까지 보지키 힘든 것이다.

순수할 수 밖에 없었던(학생이니까!) 정의의 용사들이 이제 세상을 가지게 되었다. 절대 순수할 수 없다. 정의로울 수도 없고. 서 있는 지평이 틀리게 된 것이다. 뭐, 그 자체로 비난하고 싶진 않다. 원래 '열정'만 있고 삶의 철학은 빈곤한 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단지 이제 나이 먹고 가진게 있게 되어 젊은 날의 그 열정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이젠 우리도 386을 버려야 한다. 이 사회에서 386의 프리미엄은 없어졌다. 386의 그 이름은 그들의 '훈장' 속에서만 存한다.

역전의 용사는 추억 속에서만 아름다울 뿐, 눈감고 총부리만 참호 밖으로 들이댄 채 허공으로 내갈긴 '역사'는 이미 묻혀지고 흩어지고 없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 시절 그 중공놈들 내가 다 죽였다.
그 시절 그 베트콩들 내가 다 죽였다.


가거라 38선. 가거라 386..


이제 보내오니 386 그대들은 이제 떠나가라.

잘 가시오.




2005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