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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기

김성근이 옳다



살다보면 얄미운 사람이 있다.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른바 밉상 말이다. 프로야구판에서는 SK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그런 사람이다. 물론, 프로야구를 즐겨 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렇단 얘기고, 난 좋아한다. 성향상 반골기질이 체질화된 내게는 이 양반의 그런 고독한 독고다이 스타일이 아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뿐아니라 좋게 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헐...

어쨌든, 비주류란 이유만으로 아무 이유도 없이 매도 당해선 곤란하다는 것이 내가 김성근 감독을 두둔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아무 이유가 없진 않은데, SK와이번스가 우승을 차지한 최근 2년간 얄밉게도 야구를 잘해서 질시를 불러일으킨 것과, 몇몇 선수들이 좀 밉살스러운 행동을 해서 야구 팬들의 지탄을 받기도 한 것이다. 원래 세상 일이란 것이, 부자집 도련님은 잘 해도 좀 밉게 보이기 마련이고, 조금만 잘못하면 더 크게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돼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뭐,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긴 있단 얘기다. 의도했건 우연한 사고건 간에.

난 개인적으로 현역 프로야구 감독 중에선 김성근이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볼품없는 구단의 별볼일 없는 선수들을 모아서 어떻게든 상당한 기량과 성적을 만들어 내는 것 보면 분명 탁월한 지도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삼성구단 처럼 좋은 여건과 몸값 비싼 선수들을 데리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는 비교적 수월한 것이다. 특별히 감독의 자질이 불량하고 능력이 없다면 모르지만.

김성근은 애시당초 한국야구계에는 뿌리가 없던 일본야구 출신의 아웃사이더였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야구의 길은 아마도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독특한 성격까지 더하니 자연 왕따가 됐을 테고, 왕따가 살아남는 방법은 실력으로 보여주는 방법 밖에 없으니 더 더욱 독해져만 갔을 것이라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학계만큼이나 스포츠계도 파벌의 힘은 막강하니, 학맥이나 연고인맥이 전무한 고집불통 성격의 그가 맞딱뜨린 상황이야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정수근 얘길 할 건데 김성근 감독의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한 이유는, 이번 사안에 대해 유일하게 입바른 말을 한 그의 상황을 한번 짚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1년전 음주폭행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고를 저지른 정수근에 대해 KBO는 무기한 출장정지의 중벌을 내렸다. 사실 영구제명해도 뭐라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왜냐면 그 전에도 정수근은 몇차례의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 운동선수는 연예인과 같이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그 대가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장인이나 엔지니어처럼 자신의 특출난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포츠 자체는 이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보여줌'으로써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무용한 존재들이므로 당연히 팬들에 대한 책임감도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수근이 나무깎는 기술자였다면 작업장 밖에서 일어난 일로 자신의 생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 부당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수근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자신의 생업를 유지하는 사람이므로, 야구장 바깥에서의 행동도 분명 책임져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일을 한 사람이 아무일 없이 버젓이 어린이들의 꿈이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단지 야구를 잘 하는 것만 갖고 선수를 평가하자면 야구장 안에다 기계를 설치해 놓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각본없는 드라마를 보고싶기 때문이다. 야구는 좀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불운을 이기고 그라운드에 서는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나도 정수근을 야구선수로서는 매우 높이 평가한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주루 세 가지를 다 잘하는, 이른바 삼박자를 갖춘 정수근 같은 선수는 내가 감독이래도 탐을 낼 수 밖에 없는 선수다. 이런 선수 하나 데리고 있으면 얼마나 감독의 마음이 든든하겠는가. 하물며 바닥을 전전하다 지금 중위권에 안착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로이스터 감독은 이것 저것 따질 계제가 아닐 것이다. 감독으로서의 그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니 KBO에 징계해제를 요청했을 테다. 욕 좀 듣더라도 당장 구장에 불러들여야 할 선수이기 때문이다. 욕은 잠시일 뿐이고, 시즌 성적은 연말에 감독의 목을 좌우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정작 웃기는 건 KBO다. 도대체 KBO는 무슨 생각으로 이리도 쉽게 징계해제 결정을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만약 정수근의 그 행위가 별로 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으면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가벼운 징계를 했어야 마땅하다. 당시에는 무기한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고는 1년만에 없던 일로 한다면 이것은 KBO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권위와 존경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롯데자이언츠 구단이 인기가 많은 구단이고, 정수근 선수 또한 인기가 많고 실력이 좋은 아까운 선수이고, WBC의 붐을 야구인기로 연결해야 할 올 시즌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무원칙하고 경솔한 판단이다. 이래 놓고서야 어찌 대중들의 사랑을 받길 기대하는가. 발 앞에 떨어진 동전 한닢을 보지 말고, 멀리 보고 큰 걸음을 걸어야 했다.

어리석게도 KBO는 당장의 편의를 위해 더 큰, 더 많은 미래의 출혈은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물이 샐 때는 당장은 표가 안나는 법이다. 반쯤 비고 나면 그때부터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선수의 징계를 처리하는 이런 문제는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대한 것이다. 사실 히어로즈 구단이 연명하느냐 마느냐 하는, 구단이 하나 줄어드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당장 올해 최고 관중동원을 신경 쓸 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를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KBO의 결정은 분명 경솔했다. 아까운 선수 하나 야구를 접는 것보다, 수많은 팬들의 애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회부적격자들이 야구장에서 스타플레이어가 되어있는 미래의 상황은 정말 참담하지 않은가. 나야 30년 가까이 야구를 봐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볼 테지만, 범법자들이 득시글한 야구판을 내 아이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이제 왠만한 흉악한 사고를 치지 않으면 징계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언론에서 조용해질 정도까지만 '예의적으로' 숨죽이고 있다가 은근슬쩍 다시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강간 따위가 아니라면 이제 유니폼 벗을 일 없어진 것이다. 이게 야구선수들에게 좋기만 할 일인가?

이제 송진우나 김재현 같은 선수를 보고 감동받긴 힘들어 진 것이다. 그저 젊을 때 바짝 잘해서 인기 얻고 돈벌고 인생 즐기면 되게 되는 것이다. 뭐 힘들게 남 눈치 보면서 자제하고 살 것이며, 성실하게 몸관리해서 40 넘어서 야구할 것이며, 병마와 싸워서 이기고 그라운드에 설 것인가. 그 그라운드는 이미 떳떳한 곳이 아닐진대.

KBO는 김성근 감독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어야 했다. 현역 감독들 중 김성근 밖에 할 수 없었던 얘기, 야구판에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비교적 자유로운 왕따 감독이기에 할 수 있었던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의 정서를 좀 더 고려했어야 했다. KBO는 명백히 야구팬들의 평균 도덕성을 얕잡아 본 것이다. 그냥 이정도 하고 적당히 문대면 별 일 없을 것이다 하고 판단한 것이다. 잠시 시끄럽다가 곧 조용해질 것이니, 잔소리는 짧고 그 열매는 길다고 판단한 것일 테다.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앞날은 MLB가 아니고 민속씨름이 될 수 밖에 없다. 80년대에 야구와 대등한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지금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명백히 씨름협회의 삽질 탓이다. 당장 씨름대회장을 찾아줄 노년층 팬들만을 목표로, 일절 변화와 효율적 운영을 거부했던 그 단시안적인 행정이 오늘날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야구도 다를 게 없다. 그래도 야구를 이해하고 서너 시간씩 봐줄 나와 같은 구닥다리 팬들이 있기에 당장은 연명하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당장 체질개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90년대 말 이후, 그동안 지속적인 인기 하락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제 다시 르네상스를 맞이하려 한다면 기본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 기본이란 당연히 관중수가 아니라 팬들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신뢰는 돈에서 오지 않는다. 당장은 좀 어렵더라도 꿋꿋이 지켜나가는 원칙에서 오는 것이다. 급할수록 조바심을 내지 말고 따박따박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좀 미련스럽게 보일 정도로...

다시한번 말하지만, 권위와 존경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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