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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기

김성근의 성깔이 만들어낸 황당한 게임

아.. 아깝다. 그 재미난 장면을 못보다니.. 10회 정도까지 보다가 마눌님한테 채널을 뺏기고 난 후, CF 나올 때 잠시 채널을 돌려 훔쳐보니 12회 말 기아 공격에 무사 3루 상황이길래 'SK가 막판에 엎어졌구나..'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재미난 상황이 있었던 것이었다.

뉴스를 보니 상황은 대충 이렇다.

12회 초 마지막 공격까지 결승점수를 내지 못한 SK 김성근 감독은 2아웃 마지막 공격 카운트 하나가 남았을 때, 느닷없이 대타로 투수 김광현 투입. 예상대로 삼진으로 물러난 후, 12회말 마지막 수비에서 3루수 최정을 투수로 올리고, 정상적인 경우라면 마운드에 올라야 할 투수 윤길현을 1루수로 넣음. 이어진 무사 2,3루 상황에서 1루를 비우고 모든 내야 수비수를 2,3루 사이에 몰아넣는 엽기적인 수비 포메이션을 펼침. 이때 타자는 좌타자 김형철.

뭐, 대충 이렇다. 야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 상황은 상식 밖의 상황이고, 절대로 이기려고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러 지려고 작심한 상황인 것이다. 좌타자가, 1루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투수도 아닌 야수가 던지는 공을 못쳐낼 일은 없는 것이다. 이건 그냥 배팅볼이니까. 그냥 대충 갖다대고 1루간으로 공을 굴리기만 하면 점수가 들어오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나도 타점을 올릴 수 있겠다. ^ ^

그런데 결과는, 타자가 게임을 끝낸 것이 아니라 투수(?)가 끝냈다. 싱겁게도 최정의 폭투로 3루 주자가 들어와서 게임이 끝난 것이다. 뭐 어떤 형식으로 끝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웃기지도 않는 게임이 펼쳐진 걸까... 어떻게든 한 게임이라도 이겨보려고 무박2일의 혈투를 벌이는 게임도 있는데, 그냥 비길 수도 있는 게임을 버리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뭐 이 재미난 꽁트의 감독인 김성근 감독이 말을 안 하니 알 수는 없지만 유추는 가능한 것이다. 익히들 예상하듯이, 무언의 시위인 것이다. 야구판의 왕따 감독, 야구판의 풍운아, 야구판의 괴짜 감독인 김성근 만이 할 수 있는 엽기적 '게임 버리기'인 것이다. 그의 이런 꼬장꼬장한 면모는 얼마전 정수근의 복귀논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올해는 KBO의 프로야구 규정이 무승부를 패와 같이 취급하고 있다. 그러니 승을 챙기지 않는 이상, 비기나 지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승부사들의 입장에서야 뼛골 빠지게 싸우고도 결과가 없으니 좀 허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승률은 팀 순위의 기준이 되고, 팀 순위는 곧 감독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이라, 연말에 감독의 목이 달아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그렇단 얘기고, 사실 승부의 세계에서 한 게임 한 게임의 승패는 감독이 자리를 보전하느냐 못하느냐 보다도 더 본질적인 문제다. 감독뿐 아니라 선수들 모두가 프로 승부사들이라, 승률이나 팀 순위를 떠나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비긴 경기가 왜 진 것과 똑같이 처리되냐 하는.

그리고 계산적으로 보더라도, 비기면 두 팀 다 패하는 경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김성근 감독은 이참에 성깔도 한번 부리고, 절친한 후배 감독인 조범현 감독에게 1승을 선물하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차피 둘 다 못먹을 거면 한쪽이라도 먹는게 더 낫지 않느냐 뭐 이런 것일 수 있겠다.

물론 평범한 감독들이라면 이런 짓을 못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김성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현 판도에서 3강 다툼을 하고 있는 SK와 기아인데, 경쟁상대 팀에게 1승을 선물한다는 것이 반게임에 죽고사는 야구감독의 입장에서 선뜻 선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손해와, 야구를 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냐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하고서라도 뭔가 한번 보여주고 말겠다는 버럭성질 감독의 오기가 만들어낸 아주 희한한 게임이 바로 어제의 게임인 것이다.

아무튼 김성근 이 양반, 알아줘야 한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