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이라.. IMF의 아이콘이자 10여년 후 제2의 IMF라고 하는 사상최악의 경제대란에 또다시 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경제파탄의 상징적 인물인 그가 국가경쟁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참 요상한 조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개가 풀을 뜯어 먹는 것이 그것 보다는 덜 어색할 것 같다.
뭐 어쨌든, 그 강만수가 국가경쟁력을 위해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씀을 좀 하신 모양이다. 모자란 인간들은 왜 이리 부지런들 하신지.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주셨으면 좋으련만.
사실 문제가 전혀 없진 않다. 로마자 표기법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되어 있어서 사소한 문제가 좀 있긴 하다. 예를 들자면, 이 씨가 왜 'Lee'로 표기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자의 李를 두음법칙 적용하지 않고 그냥 쓴다 해도 'Ri'가 되면 됐지 'Lee'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에는 첫소리에 오는 'L'발음이 없으니까.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이름자는 표기법의 원칙보다는 관습적 표기나 개인의 의사를 더 존중한다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다. 뭐, 개인의 성이나 이름이야 자기가 불리고 싶은 대로 불리면 되니까. 외국인들이 박찬호(Chan Ho Park)와 박세리(Seri Pak)를 서로 성이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하든 어쨌든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아무려나, 강 씨는 소설가 이문열을 끔찍이도 사랑하시옵는지 이문열의 이름자를 영어로 표기한 이름이 10개가 넘어서 외국인들이 이 훌륭한(?) 문학가의 이름을 헷갈려 한다며 로마자 표기법 문제점의 대표적인 예로 그의 이름을 거론했다. 정권의 유능한 조력자인 이 인사의 이름이 헷갈려서 노벨문학상을 못탈까봐 걱정인 모양이다.
나는 외국어 표기에 있어서 발음을 얼마나 비슷하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 보다는 표기의 통일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리값의 혼동에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은 음가의 확실한 구분과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요는, '외국인의 편의' 보다는 '표기의 원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좀 벗어난 얘기이긴 한데, 이름을 외국어로 적을 때 성과 이름을 적는 순서도 이와 비슷한 예다. 외국인 편하라고 '찬호 박' 뭐 이런 식으로 쓰는데, 이거 좀 문제가 있다. 어떤 것이 성인지는 그들이 알아서 이해해야 할 문제이지 그걸 우리가 맞춰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 맞다면 한국에서는 왜 아무도 '잭슨 마이클'이라 하지 않고 '마이클 잭슨'이라고 하는가. 이런 것은 친절이 아니라 굴욕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현재 쓰이고 있는 로마자 표기법은 2000년도에 개정된 것이다. 썩 훌륭하진 않지만 그 이전 시스템 보다는 훨씬 나은 표기법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부산'이 PUSAN'이었고, '대구'는 'TAEGU'였던 걸로 기억한다. 뭐 다 좋은데, 통일성이 없다. 엄연히 다른 글자이면 소리의 여부를 떠나서 다른 글자로 표기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똑같은 '부'의 로마자 표기가 '부산' 할 때는 'PU'가 되고 '남부' 할 때는 'BU'가 되어선 곤란한 것이다. '대구'를 'TAEGU'로 하면 '태백'의 'TAEBAEK'과는 어떻게 구분을 할 것인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생도 알다시피 한국어의 음가에서 '대'와 '태'는 엄연히 다르고, 한글에서도 'ㄷ'과 'ㅌ'으로 분명히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구절구절 얘기하는 이유는,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강 씨가 아마도 예전 표기법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뭐 그게 더 나은 방법이면 그래도 상관없겠으나 앞에도 예를 든 것처럼 내가 볼 때는 별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게다가 공문서, 도로표지판 할 것 없이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얄팍한 게 아니다. 대략 수천억원이 든다 한다. 수 억이 아니라 수천억. 안 써도 되는 곳에 돈을 쓰는 것도 경기부양이라 할 셈인가? 각하께서 좋아하시겠구먼.
뭐 다 좋다. 진짜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면 얼마의 돈이 들든, 어떤 혼란이 오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과연 10년도 채 안 돼 다시 표기법을 개정한다면서 조사는 충분히 되었는지, 또는 나라에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생각을 해보기나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단지 강 씨 개인의 알 수 없는 소신으로 추진되는 날림 정책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 문제의 담당부처라 할 수 있는 문화부와 국립국어원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기본적인 의견조율 조차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지금 이 시점,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 일을 위해 아무 근거도 없이, 아무 동의도 없이(문화부, 국립국어원은 물론 기본적으로 국민의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았다) 표기법을 개정하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30년 삽질 전문가인 주군의 영도력을 본받아 '일단 저지르고 보자' 뭐 이런 건가? 가만 있으면 노는 거고 뭐라도 들쑤셔서 헤집어 놓아야만 일하는 것이라는 70년대 마인드를 주군과 공유하시는 건가?
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인가 했던 사람이 오렌지를 '아린쥐'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과 교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교수라고 하던데 외국어와 외래어의 차이도 모르고 국민을 윽박질렀던 그 웃기던 시절. 과연 무엇을 위해 영어에 몰입을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제발 영어는 집어치우고 기본상식부터 먼저 함양하자고 외치고 싶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고 오렌지는 오렌지일 뿐인 것을.. 머리가 가벼워서 행동이 잽싼 걸까.
진짜로 똑똑한 사람은 일을 없애면서 하는 사람이다. 반면, 아둔한 사람은 끊임없이 일을 만든다. '일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수습을 안 하고 남들이 뒤치닥거리를 하게 만든다. 제일 고약한 것은 그 머리 아둔한 자가 부지런하기까지 할 때다. 남들은 사고수습하러 다니기 바쁘다. 조직전체의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나라일을 하는 고위공직자라면 말할 것도 없겠다. 국민이 고달파질 수 밖에 없다.
필요가 있어서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저질러 놓고 필요를 만들어내는 이 무지몽매한 삽질 돌격대 집단을 어찌해야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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