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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옥세설(褐玉世說)

비극으로 끝난 동화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한 순간을 맞는 것으로, 동화는 그렇게 끝나게 돼있다. 그래야만 한다. 결혼 이후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별로 교훈스럽지 않으니까. 인간사의 그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필요없다. 삶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지 않고, 세상은 그다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이 미리부터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화는 아름답게 끝나야 한다. 동화니까. 비극으로 끝나면 동화가 아니다. 2012년 대선판에 하나의 아름다운 동화가 있었다. 두 사람은 정치를 하고 싶지도, 남들에게 뻐기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그냥 수수하고 털털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서 부득불 나서게 되었다. 암만 봐도 백면서생인데 갑옷 입고 투구 쓰고 전장에 나선 상황이라고 할까. 어쨌든, 상황은 아무리 백면서생이라 할 지라도 그냥 가만 앉아있을 수 없는 백척간두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아름답게 힘을 모으기로 돼있었고, 그렇게 하늘 아래 뭇 백성들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동화는 황망하게도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건 뭔..

 

당황스럽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공주와 결혼을 한 왕자가, 왕이 되고 나서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서 놀아나는 장면이 펼쳐지면 아이들은 멘붕에 빠질 것이다. 그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대선판에서 일어났다고 할까. 차마 있으면 안 되는 황망한 상황이 벌어져버린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후보를 사퇴해 버렸다. 그 시기와 형식이 참 아름답지 못하다. 적어도 이건 아닌 것이다. 두 선수가 열심히 싸우다가 "에이 씨~ 니가 이긴 걸로 해라." 하고는 경기장을 나가버린 상황인 것이다. 보는 사람 멘붕 온다.

 

난 어차피 이번 대선판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 뭐 이런 차원을 떠나서, 안철수가 좀 어른스럽지 못한 짓을 했다고 보고있다. 그에게는 충분히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과 수단이 있었고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찬스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던져버리고 나가면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다 바보가 된다. 일을 벌였으면 최소한 마무리의 형식은 제대로 지키고 끝내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한 것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의 사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상식의 회복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짓이라는 것이다. 단일화의 내용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내키지 않는 조건일지언정 받아들인 다음에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국민들에게 판단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국민의 부름을 받아 그 자리에 나섰는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겼으면 계속 학교에서 선생질이나 하면 됐을 것이다.

 

정치는 끝없는 협상과 타협의 과정이다. 그리고 끝끝내 안 될 때는 나를 던지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노무현이 보여준 바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선례의 모범을 따르지 않고 끝내 일을 그르치고 만 상황이 마땅치 않은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일을 이런 식으로 끝내 버리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짓이다. 어른스러운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왜 아이들은 잘못을 하고도 용서를 받는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은 그렇지 않다. 마음 속으로부터 책임의 무거운 저항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싶다고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걸 아무렇게나 하는 것을 우리는 '철없다' 또는 '어리다'고 하는 것이다.

 

비록 못마땅하고 상처를 입었더라도 물러날 때는 모양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켜보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아 18 못하겠다. 나 안 할래." 하고 떠 버리는 것이 어딨는가. 이건 감동스럽지도 않고, 현금의 사태에 터럭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으며,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환멸만을 더욱 국민들에게 느끼게 할 뿐이다.

 

'난 이제 물러난다. 문 후보를 지지해 달라.' 한들,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모양새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빈정 상해서 판 뒤엎고 나가는 사람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무슨 감동과 드라마틱한 승부가 있겠는가. 김 샜다. 그리고 그 책임은 문재인 뿐 아니라 안철수 본인의 탓이 더 크게 되었다. 이것이 스스로 원한 것인가? 이것이 '진심의 정치'인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이 판에 나섰는지 지금에와서는 그것마저 의문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누군가의 양보도 없고 누군가의 희생도 없다. 당연히 누군가의 승리도 없고 누군가의 기쁨도 없다. 모두가 패자가 된 것이다. 심지어 지켜보던 사람들도 패자가 되었다. 이 대선판이 종국에 어떤 결과로 귀착되더라도 이번의 이 일은 결코 아름답기 힘들 것이다. 그저 구저분한 정치바닥의 너절한 일상을 한번 더 확인한 것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나선 것인가. 아름답지 않을 거면 왜 동화를 시작했냔 말이다. 19금 판에 동화를 들고 나온 신선함에 박수를 쳤던 사람들은 뭐가 되나. 우리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다. 이런 건 굳이 안철수 문재인이 아니라 새언니네 식구들도 잘 하는 것이다. 그거 말고 딴 걸 보여주리라는 기대감에 기다린 것이다. 대중들은.

 

가능한 시나리오 중에 가장 나쁜 것을 골랐다. 명백히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더욱 실망스럽다.

 

형(민주당)은 형답지 못했고, 동생(진심캠프)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