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토론판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검색어 랭킹에 뜨고 뭔 사단이 났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진중권과 '간결'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네티즌과 공개 설전을 한 내용이었다. 애초에 어떤 곡절로 이런 희한한 판이 벌어졌는지 내 알 길은 없으나 모양새만 놓고 보더라도 심히 어색한 판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은 대한민국 대표 이빨이고 한 사람은 진중권이 경기를 일으키는 그 '듣보잡'이니.. 뭐, 내가 모를 뿐 이상한 저장소 뭐 그런데서는 나름 유명한 사람일지 모르니 듣보잡은 아닐 수도.. 거, 소송하지 맙시다.. -.-
암튼 희한한 조합인데, 재미나게도 이런 판이 벌어졌다. 최근에 내가 정신상태도 공허하고 하던 차에, 간만에 좀 재미난 쇼를 보여주어 감사한다. 덕분에 기력이 좀 올라오는 것 같다. 세상일에 흥미도 좀 돋는 것 같고. 뭐 이차저차 감사..
진중권은 뭐 우리가 다 아는 바로 그 진중권이고, 간결은 간단한 자기 소개에 의하면 현재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라고만 밝혔다. 뭘 전공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수는 훤한 젊은이였다. 일단 액면가는 진 씨 보다는 훨씬 낫다. 진 선생 비주얼이 워낙 거칠어서 상대적으로 훤해 보였다. ^ ^
아마도 이전에 무슨 100분 토론 같은 데서 토론이 되었던 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전제를 모르는 것이 전체 토론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로 방해를 주진 않았다. 단순한 내용이고, 또 게임이 너무 일방적으로 흐르는 바람에 내용이 별 중요하지도 않았다. 정작 내용이 중요하다기 보다 토론에 대한 전제에서 게임이 끝나 버린 판이었기 때문이다.
'간결'하게 판을 정리하자면, 간결이 가지고 나온 시비 거리를 진중권이 시비거리 조차 되지 않는다면서 봉투째 되돌려준 무안한 한판이었다. 뭐가 좀 벌어져야지 보는 맛이라는게 있는 건데, 보는 사람 다 무안해질 판이었던 것이다. 결국, 동네에서 좀 노는 양군이 조폭 두목한테 시비 건 상황이랄까.. 조폭 두목 아저씨가 기가 차서 '좀 더 커서 오너라' 하고 그냥 돌려보낸 것이다.
토론 내용은 최근 새언니당과 MBC에서 사회문제화시키고 싶어서 혈안이 돼있는 NLL 문제였는데, 사실 내용은 별 중요하지 않다. 얘기할 거리가 별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비를 걸고 싶은 것이지 시비가 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똥줄이 땡기는 상황에 봉착해서 아무거나 집어던져야 하는 그 절박한 마음은 이해하나 좀 불쌍하게 보이는 그런 문제란 것이다. 암튼 그걸 들고 싸우려고 하니 얼치기 동네 양군까지 어영부영 나서게 된 것이다. 정신줄 놓고 있으면 이렇게 웃기게 엮인다는 걸 실감나게 보여줬다고나 할까.
내용은 차치하고 간결하게 판 자체만 가지고 말한다면, 간결의 패착을 두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다. 싸움은 전제가 중요하다. 부실한 전제를 깔고 논리를 전개하면 제 아무리 센 이빨로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초절정 이빨 고수일 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냥 개박살 나는 것이다. 논쟁의 주제가 특정한 결론으로 귀결될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이념이나 미학적 관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내용에 관계된 것일 때는 특히 그렇다.
옳은 전제를 깔고 있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아니 최소한 지지 않을 수 있다. 싸움에서 포지션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대등한 싸움실력을 갖췄다고 할 때, 내가 어떤 포지션을 점하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지형지물을 살피고 내가 유리한 싸움인지 불리한 싸움인지를 재빨리 파악하는 것은 싸움꾼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보다 훨씬 세다고 판단되면 싸움을 안 해야 하고, 비슷하다고 판단되면 내가 유리한 포지션을 먼저 점하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지는 것은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판단력이 없기 때문이다. 간결은 자신의 말대로 너무 나이브했다. '내가 진중권과 한번 일합을 겨뤘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려면 그럴 수는 있겠으나 그게 바로 아마추어란 것이다. 풀냄새 난다. 그리고 이것은 두 번째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간결의 패착 두 번째는, 아마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런 종류의 토론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진중권은 이런 판에는 닳고 닳은 사람이다. 설사 수세에 몰리더라도 금방 정신을 수습하고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임기응변 능력을 갖췄다. 그리고 그에게는 타고난 순발력이 있다. 이것은 배우거나 익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타고난 것이다. 토론전이라는 것은 순간의 상황성이 중요한데, 이때 순발력은 매우 위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토론에는 약한 사람들이 있다. 순발력에 의한 임기응변이 약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진중권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이빨계의 프로선수이다. 이런 판에 익숙하지 않은 간결은 설사 아무리 옳은 전제를 깔고 도올 찜쪄먹는 학식을 자랑하더라도 한 순간 페이스를 잃으면 순식간에 당할 수 있다. 그런데 간결은 아무리 봐도 그다지 먹물 냄새는 풍기지 않는, 쉽게 말하면 그냥 딱 공부하는 학도 정도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게임이 될 리 만무하다.
이미 토론 초반에 진중권의 잽을 한두방 맞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보는 사람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중반에는 이미 완전히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는 게 확연히 보였다. 토론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표현했듯이 그는 자신이 준비한 것조차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무엇인가. 페이스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런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한번 당황하면 정말 멘탈이 붕괴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다가 머리가 새얗게 되는 경험을 한 기억이 한 두번 씩은 있을 텐데, 타고난 꾼들은 그런 상황에 빠져도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치고 나온다. 그게 '타고난 꾼'과 평범한 보통 사람의 차이다.
누구라도 싸움판에서는 수세에 몰릴 수 있다. 그때 중요한 것이 바로 상황을 돌파하는 능력인데, 간결은 그것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의 수준이었다. 적어도 상황성이 중요해지는 실시간 토론에서는 매우 적합하지 않은 능력치란 것이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무슨 저장소는 그런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다이다이 싸움판에선 매우 치명적이다. 토론의 내용이나 결과를 떠나서, 보는 게 매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의 멘탈이 붕괴되는 것을 보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설사 그 상대가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일지라도.
간결은 그래도 대책없는 막무가내 꼴통은 아닌 듯하다. 토론 후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패배를 깨끗이 시인하고 자신이 너무 터무니 없이 덤볐다는 것을 사과했다. 누가 보더라도 박살이 났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이 어설펐던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내면에서 소화를 시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이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젊기는 하나 어린 나이도 아니고 이제 자신의 세상도 가져야 할 텐데, 어쩌면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황망한 꼴을 당하고 그래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에 생각이 꼴통인 사람은 없다. 잘못을 인정 않고, 인정할 줄 모를때 꼴통이 되는 것이다.
좀더 발전한 토론문화, 그리고 다양한 견해와 생각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합의를 이뤄가는 것이 성숙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관전평을 마친다.
진중권에게 과감히 일전을 신청한 용기에 어쨌든 박수를.. 너무 터무니 없는 판을 벌려서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든 것에 야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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