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옥세설(褐玉世說)

4년에 한 번 축구 보는 인간의 월드컵 관전기



난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한다. 선천적으로 저질 운동신경을 타고 난 탓에 사실 축구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운동은 나와 관련 없는 얘기다. 물론, 하는 걸 안 즐길 뿐이지 보는 건 남 보는 만큼은 보고 즐기는데, 그 대부분은 야구다. ^ ^

나처럼, 몸으로 즐기는 것보다 눈으로 즐기는 인간에게는 아무래도 축구보다는 야구가 훨씬 재미난 스포츠인 것이다. 적어도 '보는 재미'에 있어서는 축구가 야구에 훨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1人이다. 뭐,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굳이 태클 걸진 마시라.. ^ ^

아무튼 이렇게 야구를 편애하는 인간도 축구를 볼 때가 있으니, 그때가 바로 월드컵이다. 지금이다. 수준도 수준이지만 국가대항전이라는 재미난 조건이 걸려 있으니 아니 재미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4년마다 한번 하는 희소성이란, 나같은 축구 비애호가에게는 딱 맞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축구도 4년에 한번 볼 만큼은 재미있다. 퍽.. 헉~

이번 월드컵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보는데, 좀 재미가 덜하다. 이거 뭐 골도 좀 화끈하게 터져주고,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 화려한 플레이도 좀 나와주고 해야 하는데 좀 밋밋하다는 거다. 나같은 축구 비애호인에게는 그저 화려한 눈요기가 최고인 것이다. 무슨 작전이니 시스템이니 이런거.. 사절이니깐. ^ ^

암튼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와중에도 인상 깊은 경기가 몇 있었으니, 그 중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팀의 경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뭐 경기야, 일방적으로 밀린(그게 당연한!) 경기였지만, 그들의 그 투지는 참으로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피파 랭킹 105위 팀이 1위 팀을 상대로 그 이상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그들은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승부는 승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룰에 어긋나지 않는 한, 지지않기 위해 최선의 방책을 찾아 내 경기에 임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뭐 어쨌든, 실로 40년 만에 월드컵에 나타나, 세계 1위 팀을 상대로 경악스런 경기력을 보여준 것도 그렇고, 멋진 사나이 정대세의 눈물과 뛰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자다가 일어나 후반전 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대세의 그 눈물 장면은 나중에 보았는데, 그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은 뭐 애국심이나 그런 것이 아니다. 월드컵에 나와서 애국심으로 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는 그의 눈물에서 꿈을 이룬 한 인간의 진한 카타르시스를 보았다. 간절히 원한 것을 이룬 한 인간이 그 순간에 맞닥뜨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 그것이었다.

그는 얼마나 월드컵 무대에 서고 싶었겠는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한국인 출신이기에 일본 대표로 뛸 수 없었던 정대세. 국적의 문제로 어떤 나라 선수로도 뛸 수 없어서 좌절했다가, 천신만고 끝에 북한 대표로 기어코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 정대세가 그 순간 어떤 감흥에 빠졌을 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국가가 연주될 때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굵은 눈물을 떨어뜨려야 했던 그 심정을 타인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지만, 한 인간이 꿈을 이룬 순간 터뜨린 울음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정대세의 북한 팀이 16강이 아니라 설사 우승을 하더라도 그의 눈물은 결코 브라질 전에서 터뜨린 눈물보다 뜨거울 순 없을 것이다. 그는 월드컵 무대에 서는 그 순간, 이미 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국 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지 난 모르겠다. 온탕과 냉탕을 거듭한 앞의 두 게임을 보건댄, 16강의 길마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같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실력은 냉정하고 가차 없는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운이 아니라 열정 뿐임을 새삼 느끼는 것이다. 한국 팀이 좀더 진지하고 열정적일 수 있기를 바란다. 과도한 부담감이나 욕심은 불필요한 것이다. 없는 실력이 욕심부린다고 나오진 않는다. 헛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다만 월드컵에 출전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팀 선수들이 정대세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몇 선수들은 욕심이 있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축구를 잘 볼 줄은 모르지만, 아르헨티나 전의 그 맥빠진 플레이는 분명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선수건 감독이건. 그래서 그들에게 나는 순수한 열정을 부탁하는 것이다. 아무리 월드컵이 상업화되었다 해도, 그것은 그라운드 밖의 얘기여야만 하지 공 차는 선수들의 것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 만큼은, 순수한 열정으로 뛰어주길 바란다. 난 뭐, 거리응원 같은거 질색하는 사람이라 나가지는 않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저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의 열정은 꼭 필요한 것이다.

꿈과 열정.. 그것이 없다면, 월드컵이 다 무어란 말인가.


꿈을 이룬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정대세. 참.. 멋진 사나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