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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생각하며

까닭없이 울적한 날의 소고



가을인가 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임과 동시에 또한 상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참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상실하지 않으면 결실할 수 없다.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꽃과 열매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인데 언제나 공존할 수는 없다.
열매맺음은 꽃의 상실을 전제로 하지만, 또한 열매가 썩어야 싹이 올라오지 않는가.

아무려나, 가을에는 까닭없는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상실감이라니.. 뭐 가진 게 있었어야지 상실을 할 텐데..
가만있자.. 뭘 잃어버린 게야. 도무지 알 수 없다.
잃어버린 것은 없이 잃어버린 느낌(喪失感)만 있으니 이거 참 난감하다.
어쩌라는 것인지..

외로움인가.. 혹 그럴지도.
외로움과 상실감은 확실히 다른 것이니까.
상실감은 원래 있던 것이 없어진 뒤에 남는 허전함이고,
외로움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쓸쓸하고 적적한 것이니
외로움이 더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 외롭지 않은가. 인생은.
가진게 많거나 지인이 많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고 한 인간관계의 가운데서도 인간은 외로울 수 있지 않은가.
요컨대 외로움이란 조건적인 감정상태가 아니라 원초적인 감정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날 때부터 외로움의 인자를 갖고 태어난다.
꺼내 쓸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음의 차이가 있을 뿐.

감성적인 인간은 자아가 허약한 것이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뭐 어떠랴. 인간은 감성적이다가 또 지독히 이성적이다가 하는 것이다.
감성적이기만 하거나 이성적이기만 하면.. 못쓴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 저리 넘나들며 가는 것이 또 삶이 아닐른지.

어느 순간 딱 끝이 온대도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온 길도 모르니 가는 길도 모르는 것이지.

바람에 실려 왔다 바람에 실려가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