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옥세설(褐玉世說)

차라리 영화 같은 현실 앞에서..




땅이 흔들리고.. 물이 덮치고.. 불이 나고.. 방사능에 노출되고..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덮친 일본은, 지금 아비규환이 되어 있다 한다.

잠깐 잠깐 TV화면을 통해 사고 모습을 보고는 모골이 송연해져 계속 지켜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차와 배가 장난감처럼 휩쓸려 가고, 필사적으로 뛰는 사람들 뒤로 집채만한 파도가 덮치는 장면은.. 차마 저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인가를 믿기 힘들게 만들었다. 도무지 소름이 돋고 기가 막혀서 할 말조차 나지 않는 참혹한 장면이었다.

미처 대피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맞은 참사라, 그리고 워낙에 규모가 큰 지진이라, 그렇게 지진대비가 잘 되어 있다는 일본도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준비란 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는 한편, 만약 저런 지진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아마도 열배 혹은 백배 더 처참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온몸에 털이 꼿꼿해진다.

이제 남의 논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건물 신축시 내진 설계를 강제적으로 하게 해야 하고 그 수준도 최소한 일본에 준하는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지금 손 놓고 있다가 한반도에서 이와 유사한 정도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의 건물 100개 중의 98개는 내려앉을 것이 분명하다. 가만 있는 건물도 내려 앉고 다리가 끊어지고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니 저와 같은 강진이 발생했을 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만약 도시지역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제대로 서 있을 건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일본은 내진설계가 되어있어서 작은 목조건물이나 조립식 건물 외에는 건물이 무너진 경우는 이번에도 별로 없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의 대비가 그나마 위력을 발위한 정도가 이 정도로란 얘기다. 그와같은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만약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수십만 아니 백만 단위의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난 지진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느낄만한 지진이 거의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좀 둔해서 그런지 미세한 진동은 제대로 못 느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공포스러울 것같다. 사실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땅이 흔들린다고 하는 그 무지막지한 공포를 생각으로라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땅이 흔들린다는 건 가장 무서운 공포일 것이다. 사람은 발이 땅에만 닿아 있어도 일단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안정감과 평온함은 흔들림 없는 무언가에 의지해 있는 것을 느낄 때이다. 아무리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고 불이 덮쳐도 일단 도망갈 데가 있기에 살아날 구멍이 있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할 곳을 찾으면 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막아줄 곳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땅이 흔들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땅이 흔들리고 꺼지는 것은 '피할 데가 없다'는 원초적 공포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배 타고 식겁한 사람은 배 안 타면 되고, 비행기 탔다 식겁한 사람은 비행기 안 타면 된다. 그런데 땅이 흔들려 식겁한 사람은 어디 피할 데도 없다. 이번 지진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게 될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키 힘든 것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향후로도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거기다, 가족을 잃거나 친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더욱 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아는 친구가 하필 지진이 난 지역에 있어서, 어제 네이트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나마 인터넷은 연결된 상황이라 그나마 그것도 가능했는데, 참.. 말도 안되게 참혹한 상황이라고 한다. 내가 상상하긴 힘들지만 아마 전쟁이 휩쓸고 간 상황인 것 같다. 이 친구도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하고, 임시대피소 같은 곳에 있다고 하는데 먹는 것도 변변치 않다고 한다. 지진을 일상으로 겪고 사는 일본인들도 생전 처음 겪는 난리라는데, 그런거 처음 겪는 사람이야 오죽 했을까.. 아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넋두리처럼 하는 얘기가, 꼬리에 불 붙은 개마냥 발발이 뛰어댕기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더란다. 일본인들의 침착함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아직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고 있지만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희생자가 수만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원전 마저 폭발하는 등 향후 미칠 2차적인 피해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아마도 일본이 이 참화를 극복하는데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수습도 되기 전에 또다른 지진피해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참혹한 와중에, 지진도 안난 땅에 가만 앉아서 정신줄을 놓아 버린 인간들이 있다. 일본에 일어난 지진 소식에 '거봐라, 잘됐다'며 희희낙락한 단세포들이 있는 모양이다. 참.. 같은 인간이란게 모욕감이 느껴진다. 인류가 아니라 무슨 제3의 영장류로 따로 분류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참.. 듣고도 믿고싶지 않은 짜증나는 뉴스가 몇개 더 떴다. 이거 뭐 눈 감고 뒤 막고 살 수도 없고. 어쩌란 건지. 참 짜증만 솟구친다. 덜떨어진 종자들이 인터넷에 댓글질하는 거야 인간이 모자라서 그렇다 치고, 도무지 이 상황에서 황당한 행동으로 삽질하는 인간들은 뭐 하자는 건지.

영화를 송출하는 모 케이블 방송에서 이참에 재난영화를 특집으로 편성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처먹었다는 뉴스가 떴다. 개같이 욕들어도 싸다. 도대체 생각하라고 있는 머리를 생각하는데 안쓰고 모자 쓰는 데만 쓰나보다.

그리고 웃기지도 않는 황단한 뉴스를 또 하나 봤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세운 걸로 유명한 조 모 목사가 "일본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이런 벌을 받았다"는 내용의 말을 한 모양이다. 일본은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가 적은 나라에 속한다. 아마 그래서 조 목사가 비아냥 댄 듯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것이다. 망언도 이 정도면 명품이다.

일본이 과거 여러 패악을 저지르고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도 하지 않고 공식적인 참회도 하지 않는 것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일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정리를 해야 할 일이 있고 민간이나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개개인 국민이 참사를 당한 것을 위로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조롱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인간으로서 아픔을 나누어야 할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헤아리기 힘든 큰 슬픔을 당한 일본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도울 것이 있으면 마땅히 도와서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다시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이다. 그래야만 또한 그들도 이 세상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또한 그것이 그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뒤돌아볼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혼자 잘나서 혼자 잘 살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영화와 같은 이 참사가 더 이상의 피해없이 잘 수습이 되어 다시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