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옥세설(褐玉世說)

팬택은 태블릿PC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동종업계를 절망시킨 iPad2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애플을 까고 나섰다. 팬택도 태블릿PC를 준비하고 있나보다. 심히 많이 그리고 괴롭게 아이패드2의 출시를 바라본 심정을 모를 바는 아니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찌질거리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 전략도 아니고 업계에 대한 충심의 고언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일단, 박 부회장이 동원한 언설들을 한번 살펴보자. "살인적 가격, 독점, 시장교란" 뭐 이런 살벌한 단어들이 동원됐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그렇게 느낄 뿐'인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작년에 애플이 아이패드를 들고나오면서 태블릿PC 시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유념할 것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은 태블릿PC가 아니라 '태블릿PC 시장'이라는 것이다. 태블릿PC는 그전부터 있던 것이다. 애플은 창사 이래 계속 그래왔다. PC를 처음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PC를 사고싶게 만들므로써 PC시장을 만들어내었고, MP3플레이어를 처음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MP3유통시장을 만들어내어 MP3플레이어를 거침없이 팔아치웠고, 이미 포화상태에 있던 휴대폰 업계에 마저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라 혁신적인 사용자 활용도와 만족도를 제공하며 일거에 시장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아이패드도 어김없이 그 작업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미 10년전부터 있었던 태블릿PC를 끄집어내어 매력적인 시장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불과 1년만에 세계의 모든 PC관련 업체 및 통신관련 업체들이 태블릿PC를 만들고 싶어서 못견디게 만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애플이 아니더라도 태블릿PC 시장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물론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시장을 선도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걸 애플이 했단 말이다. 애플이. 여지없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 곤란하다. 누군가는 할 수 있었을 일을 왜 늘 애플이 하는가. 그 잘난 삼성은 왜 못하는가 말이다. 그러고는 맨날 더 좋은 스펙과 더 좋은 기술력을 내세우고 늘 시장을, 소비자를 우습게 안다.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서 저절로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과, 지가 잘났으니 안 따라오면 바보라고 교만하게 말하는 사람의 차이다. 누구에게 더 인간적 끌림을 느낄지는 명약관화하다.

팬택은 매우 훌륭한 회사다. 국내에서조차 마이너의 불리한 입지를 딛고 오늘의 성공을 이룬 것은 매우 입지전적인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이번 언급은 매우 실망스럽다. 기술력과 서비스의 진검승부로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지만, 시장 1등 기업을 비난하고 근거 없는 마타도어를 일삼으며 네거티브 전술을 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래봐야 자신들만 찌질해진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박 부회장이 전략적으로 그런 언급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먼저, 살인적 가격.. 이번 아이패드2가 가격을 주요 무기로 들고 나온 것은 맞다. 기능과 외형은 딱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 만큼만 업그레이드했다. 더 좋은 사용자 편의성과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예상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 말마따나 시장을 교란시킬 정도의 극악한 제살 깎아먹기식 저가격이 아니라, 기존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이다. 애플은 아이패드의 가격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거듭 확인시켜 줬을 뿐인 것이다.

박 부회장이 세상일에 눈 막고 귀 막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근 여러 차례 기사화됐던 아애패드2의 원가에 대한 뉴스를 보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아이패드2의 판매가격에서 부품이 차지하는 원가가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사 참조) 인건비와 유통비를 감안하더라도 애플이 아이패드를 팔아서 얼마나 큰 수익을 거두고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뿐 아니라,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팔아 챙기는 마진률에 대해서는 이미 시장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자판에 글자 몇개만 치면 그 경악스러운 애플의 수익률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의 가격으로 판매를 해도 이 정도인데, 도대체 얼마를 더 비싸게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후발 주자들을 위해 애플이 왜 희생을 해야 하나. 시장교란? 시장 신규 진입자를 고사시키기 위해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 업체가 구사하는 전략이란 것은 마진을 손해보면서, 심지어는 원가 이하로 당분간의 출혈을 감수하면서 우월한 가격경쟁력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압도적인 시장지배권을 가진 기득권 업체가 유리해지고 경쟁력이 약한 시장 신규 진입자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손을 털고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이 독점의 폐해이고 많은 나라들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태블릿PC 시장에 애플이 그런 정책을 펴고 있는가? 그런 소리는 SK와 삼성한테 하는 것이지 애플한테 하기는 미안한 소리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애플은 이미 이 가격대를 가지고도 경악스러운 수익률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이상 받기가 미안한 고마진을 이미 챙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살인적 가격에, 독점에, 시장교란이란 말인가.

다른 업체가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없다면 안 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도 억지로 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은 예전에 현대와 삼성이 국내 시장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장사할 수 있었던 시장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오로지 제품경쟁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으며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환경에 견딘(소비자에게 인정 받은) 업체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팬택은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것인가? 허덥스런 제품을 터무니 없는 가격에 내놓고도 소비자들이 사주길 바라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징징대지 말아야 한다.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다. 가격을 맞추어 낼 수 없다면 타겟을 분할하고, 기능으로 차별화할 수 없다면 디자인과 사용편의성으로 대응하는 것이 전략이다. 어떻게든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자에게 힘으로 대응하고 치타에게 속도로 대응하려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짜지 않는다면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아늑한 엄마 품속을 바란다면 그냥 휴대폰만 계속 만들어도 될 것이다.

팬택은 매우 진취적인 회사라 믿는다. 태블릿PC 시장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진짜 실력으로 정면승부를 펼치기를 기대한다. 휴대폰 업계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삼성과 LG에 경쟁하고 대등한 힘을 보여줬던 능력이면 태블릿PC 시장에서도 충분히 좋은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찌질거리는 것은 팬택의 색깔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과연 누구의 동정을 얻으려는 것이며, 과연 동정으로 경쟁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만 남길 뿐이다.

애플을 비난해서는 애플을 이길 수 없다. 애플 제품에 만족하는 많은 사용자들을 비난해봤자 그들이 팬택으로 오지 않는다. 팬택은 어디서 장사를 하려고 하는 것인가. 안드로메다에서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애플제품 사용자들을 기분 나쁘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 좋은 다른 제품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의 호떡집에 가는 손님들을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전략이 아니다. 왜냐면 그들을 우리집으로 불러들여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착각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