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 면상은 대한민국 1%로 참 겸손하시다..
가끔씩 그냥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특별히 그 노래를 좋아했거나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저절로 흘러나와서 한동안 계속 귓가에 맴돌게 된다. 가끔 그럴 때마다 '고것 참 묘하다..' 하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노래란 것도 하나의 감정의 발로인 지라 그냥 또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두곤 한다. 그런 때야말로 그 노래가 생명력을 가지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최근에 그냥 문득 기어나와서 맴도는 노래는 조영남의 '지금'이다. 참.. 생뚱맞다. 가을이 깊어진 탓일 게다. 아니면 이제 그만큼 내가 삭은 것이거나. 이건 뭐.. -.-
두어 곡 안 되는 '힛트'곡으로 참 오래 버티시는 형, 영남이 형의 이 노래는 이 형의 거친 비주얼을 감안할 때 참으로 매치가 안 되는 감상적인 노래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노래만 들을 때, 곡의 느낌이 극대화 된다. 이런 비주얼에 이런 노래가 나오는 것, 이게 현실인 거다.. 우리는 영화 속에 사는 것이 아니므로..
이 형,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그냥 예술적 저작물과 그 창작자를 애써 구분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케이스에 들어가는 양반이다. 개인적으로다가.. 뭐 어쨌든 그만큼 이 형의 실력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언행과 삶의 족적들을 감안하고서라도 들을 만큼 그 노래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은 그의 노래에만 유용한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자유스러움이 타인까지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다고 나는 느끼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로움은 타인까지도 자유스럽게 느끼도록 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주관이라, 난 그의 자유분방 혹은 호방한 삶의 스타일에 대해 다소 작위적이고 가식적이라고까지 느끼곤 한다. 그냥 생긴 것만 자유스러우시면 참 좋으련만..
암튼, 가요계에서 노래부르는 능력 하나 만큼은 참으로 탁월한 역량을 뽐내고 계신 영남이 형, 이 형의 대표 힛트곡은 단연 '화계장터'인데, 나는 이 '지금'을 그의 노래 중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뭐 그냥 나의 느낌이므로 뭐라고 이유를 달긴 힘들다. 쩝스..
노래라는 것이 마냥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훌륭한 노래라도. 노래에는 색깔이 있고 메세지가 있고 감정이 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딱 다가올 때 비로소 그 노래가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력이 긴 노래는 순간의 임팩트는 약해도 사람의 감정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런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것이 멜로디이든 가사이든 아니면 노래를 부른 가수의 삶의 곡절이든.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공감을 일으킬 때, 불꽃이 튀기는 것처럼 혹은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내 안에서 솟아나오게 된다.
이 노래 '지금'은 남녀간의 사랑, 특히 만나고 헤어짐의 그 스산한 한 과정을 정말 담담히, 그리고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만나고 이별하는 것이 모두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일 수는 없다. 현실의 우리의 삶은. 그저 감정이 이끄는대로 그렇게 다가갔다가 또 멀어지고 하는 것이다.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이, 이유가 있어서 헤어지는 것도 또한 아닌 것이다. 딱히 뭐라고 하기 힘든 그 '애매한' 순간, 우리는 그냥 담담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어처구니 없게도, 사랑도 낡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애매한 자들의 애매한(혹은 밥줄지상주의) 논리 때문에 노래를 걸 순 없고(-.-;) 가사만 한번 보자..
지금, 지금 우린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닌 걸
분명 내가 알고 있는만큼 너도 알아
단지 지금 우리는 달라졌다고 먼저 말할 자신이 없을 뿐
아~ 저만치 와 있는 이별이 정녕코 무섭진 않아
그 마음의 빛바램이 쓸쓸해 보일 뿐이지
진정 사랑했는데 우리는 왜 사랑은 왜 변해만 가는지
지금, 지금 우린 그 옛날의 열정이 아닌 걸
분명 내가 알고 있는만큼 너도 알아
단지 지금 우리는 헤어지자고 먼저 말할 용기가 없을 뿐
아~ 저만치 와 있는 안녕이 그다지 슬프진 않아
두 가슴의 엇갈림이 허무해 보일 뿐이지
아닌 척 서로 웃으며 이젠 안녕 이젠 안녕 돌아서야지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걸, 먼저 말하면 잔인해지는 걸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애매한 그 순간의 혼란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스산한 감정을 잘 버무려 놓았다. 그냥 이렇게 글로 써 놓으면 조금 청승맞아 보일 수 있지만 노래라는 것이 멜로디를 타고 귀를 때릴 땐 뭔가를 툭툭 치는 것이 있다. 조영남의 넋두리하듯 툭툭 던지는 창법이 매우 잘 맞아떨어진 노래라고 나는 느낀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이랄까..
귀를 자극하는 노래는 당대에 사랑받을 수 있는 표현방식이라면, 감성을 건드리는 노래는 임팩트는 약하지만 오래오래 사랑받는 깊은 맛이 있다. '유행가 가사'의 그 유치뽕짝함이 어느 순간 제대로 걸려드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인생이 늘 쿨하고 시크한 것이 아니다. 멋진 것은 잠시고, 우리의 긴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누구나 그렇듯 구질구질하게 계속되는 것이니까.
이별이 슬픈 것은 아니야.. 이별한다는 사실이 그냥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지. 만나는 순간 헤어짐은 정해져 있는 것이어늘, 다만 생각지 않고 있던 것 뿐이지.
지금.. 지금.. 그 때가 온 것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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