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시작하게 되면 늘 장비병이 도지기 마련이다. 서툰 목수가 연장탓 한다고, '이것만 있으면 정말 잘 할텐데..'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경우의 대부분은 그게 없어도 크게 지장이 없다. 단지 그게 있으면 더 잘 할 것 같다는 다만 혼자만의 생각일 뿐.
난 그래도 뭘 한다고 비싼 장비부터 잔뜩 사다놓고 하는 스타일까진 아니지만(그럴 형편도 안 되고..- -) 사실 좀 필요성을 느끼긴 했다. 뜀박질은 다리가 하는 것이니 마라톤 시계가 없어도 뛰는 것이야 문제가 없지만, 그냥 무작정 뛰는 것에 만족 못하고 자꾸만 기록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달리는 자의 원초적 본능'이랄까.. 뭐 그런 것이다. 쩝스~ (뭐 이런 구차한 변명이란..)
사실 몸관리를 위해 아침 달리기를 시작하긴 했지만 언젠가 하프, 더 나아가 마라톤 풀코스를 한번 뛰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없을 수 없다. 그것은 달리는 자의 최종적 꿈이자 로망이니까. 그리하여, 가을에는 하프를 도전하리라는 가열찬 꿈을 나 또한 가지게 된 것이다. 꼭.. 꼭 하고싶다..
그 얼마나 좌절과 굴곡으로 얼룩진 나날이었던가. 작년 봄에 푸른 꿈을 안고 운동을 시작한 이래 다리 근육에 무리가 가서 두 번이나 운동을 접어야 했다. 체육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타고난 저질 체력 때문인지 어느새 먹어버린 나이 때문인지 뭘 조금 하려고 하면 몸이 스트라이크를 해대어 나의 푸른 꿈들은 번번이 좌절의 쓴 맛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시행착오와 몸의 회복을 바탕으로 드디어 이번 달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짧은 거리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갈 생각이다. 생각대로 기록은 조금씩 단축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매번 불편함을 느낀 것이 바로 시계였다. 아날로그 바늘시계로는 당체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게다가 무겁다. 80g.. 그냥 일상생활 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뛸 때는 좀 문제가 다르다. 한참 힘들 때는 아령을 들고 뛰는 것같다. "에이 C.. 도저히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뛸 때마다 드는 것이다. 헐..
시간이 단축되면 좀 그 즐거움을 느끼고 싶고, 구간 마다 지금 어느 페이스로 뛰고 있는지, 무리하는 건 아닌지, 너무 널널하게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런 요구를 정확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혀 스포츠 용도로 제작되지 않은 시계로는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
뭔 대단한 마라톤 씩이나 한다고, 조기축구회 하면서 유니폼과 축구화는 국대급으로 걸치려고 하는 짓거리는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도 좀 거시기 하긴 한데, 그래도 그 간절한 욕망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
그리하여 몇날며칠간을 인터넷의 바다를 찾아헤멘 끝에, 쓸만하고 마음에 들면서 감당할만한 가격대의 물건을 골랐으니 바로 '타이멕스 T5H381'과 '아식스 CQAR0308'이었다. 처음에는 타이멕스 T5H381 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울었다. 일단 스포츠 시계 전문 메이커이고, 적당한 가격에 포스가 느껴지는 디자인 그리고 딱 맞춤한 듯한 기능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훌륭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한 두 가지 이유와 우발적인 어떤 사단이 겹쳐서 결국 아식스 CQAR0308로 방향이 틀어졌다. 인연은 결국 타이밍 싸움..
마라톤 시계의 가장 핵심적 기능이 Lap Time인데, 이 '아식스 CQAR0308'은 500개 씩이나 지원한다. 사실 거의 쓸데없는 용량이다. 50개만 해도 째고남는 것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면서 100m 마다 랩타임을 찍지 않는 이상 500개가 과연 필요할까 싶다. 사실 랩타임을 100m 마다 찍을 일도 없거니와 그리한다 한들 랩 찍다가 지쳐쓰러질 지경인 것이다. 과연 그 많은 랩은 왜 필요한 걸까..
기능적 측면이나 성능은 뭐 좀 써봐야 알 테고, 일단 디자인은 마음에 든다. 스포티함과 진중함의 적절한 조화라고 할까. 꼭 운동할 때가 아니더라도 편한 복장에 착용하기에도 비교적 무난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다만, 우레탄 밴드가 생각보다 뻣뻣한데다 디자인 자체가 곡선으로 돼있어서 손목에 차고 있으면 편하지만 끌러서 어디 놓아둘 때면 여간 성가시지 않다. 동그란 모양 그대로 굳어져 있으니 어디 걸기도 힘들고 넣어두기도 마땅치 않다. 사용상의 편의가 보관상의 편의를 잠식한다.
제품에 딸려온 신문지 크기의 설명서.. 이건 뭐,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딱 펼치는 순간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그러나 어쩌랴.. 기능을 알아야지 써먹지.. 꾸역꾸역 읽어간다. 다른 건 필요없고, 랩타임 쓰는 법만 알면 된다. 뭐 다행히 그렇게 많이 복잡하지는 않다. 그나저나, 나이를 먹으니까 뭘 새로 배워서 익힌다는게 조금씩 귀찮고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그런게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 같은데.. 쩝스..
동네 뒷산에 등산 가는데 뭔 기백씩 몸에 휘두르고 가는 게야.. 하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난데, 이거 뭔 대단한 운동씩이나 한다고 마라톤 시계를 사서 껄떡거리는 모양이 좀 웃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으기 들기도 한다. 대충 나도 한심해지는 건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에잇~
어쨌든..
Let's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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