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저런 얘기들

보는데 1리터의 눈물이 필요한 「1리터의 눈물」

가슴에 손을 대어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소리가 난다. 심장이 뛰고 있다. 기쁘다. 난 살아있다.



그냥 문득 최루성 드라마를 보고싶어서, 일본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을 봤다. 중간에 한번 쉬긴 했지만 쭉 이어서 봐버렸다. 최루성 드라마라서 끊어서 보면 감흥이 떨어지기 때문도 있지만, 그냥 이어서 보게 되었다.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 보고 나니까 꽤 긴 분량이다. 45분짜리 11편이니.. 도대체 어떻게 본 거야..

내용은 단순하다.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소녀가 죽음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가슴을 쥐어짜는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 중간중간에 실제 주인공인 키토 아야(木藤亜也)의 일기글과 사진을 삽입해 이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임을 계속 상기시킨다.

15살 한창 피어나야 할 나이에 온몸의 운동능력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망가져 가는 불치의 병을 얻게 된 소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갑작스레 황망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가족들의 혼란 그리고 학교를 비롯한 사회의 차별 섞인 시선들이 병보다 더 무섭게 소녀의 삶을 옥죄어 오고, 소녀는 하나 둘씩 자신이 가졌던 그 별것 아닌것들 조차 놓고 뒤돌아서야 한다.

1리터의 눈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인정해가던 소녀가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도 같았던 학교를 포기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누구든 자신의 존재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영혼으로 흘린 1리터의 눈물이 필요하다.. 자신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1리터의 눈물이 필요하다..

자신의 존재의 모든 것이었던 학교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소녀는 1리터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서 담담히.. 너무나도 담담히 교문을 나선다. 소녀에게 남겨진 미래는 단지 '생존'이라는 너무도 삭막하고 너절한 것일 뿐이다. 어제까지 꿈꾸던 것은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나의 두 다리로 걷고, 내 손으로 밥을 먹고,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멀쩡하게) 태어나서 아무런 병에 걸리지 않고 한 번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얼마나 큰 로또에 당첨된 일인가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나마 그 숱한 불행들은 피해서 살아남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에 불행해 하기보다는 내가 피할 수 있었던 불행에 훨씬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사실 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이와 같은 복을 받은 것이니 로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무 노력도 않고 가지게 된 이것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삶의 순간 순간이 진지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일 당장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향유할 그 모든 평범한 일상을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며 지금 이순간 잠자리에 들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감사한 일인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역시 좋은 이야기의 힘이다. 그냥 심란해서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 한편(은 아니고 11편) 봤더니 사는게 좀 진지해진다. 별것 없는 남루한 삶을 위해 1리터의 눈물과 맞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새삼,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