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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기

계륵이 된 박찬호, 이종범의 길을 갈 것인가.



계륵이 되었다. 鷄肋, 닭 갈빗대.. 먹자니 먹을 것은 없고 버리자니 못내 아까운, 뭐 그런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특등급 한우 소갈비였던 박찬호가 어쩌다 닭갈빗대 신세가 되었나.. 세월이 무상할 뿐이다.

박찬호가 누군가. 국민 야구선수가 아닌가.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단 한번 만이라도 서보길 꿈꾸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17년간이나 활동한 (동양계니 한국인이니 뭐 그런 걸 떠나) 말 그대로 슈퍼스타가 아닌가. 부침을 거듭하긴 했지만 선수로서의 한계 나이가 될 때까지 세계최고의 무대에서 활약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업을 쌓아 올린 것은 분명하다.

그 살아있는 레전드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으로 간다고 했을 때 다소 의외였던 것은,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또는 '뭐하러 굳이?'와 같은 궁금증이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직접 언급한 적도 있지만, 아마도 한국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제도상의 문제 때문에 올시즌을 한국 무대에 바로 들어올 수 없어서 일본을 경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의 내 생각은, 그냥 메이저리거로 은퇴하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는 것이다. 이미 선수로서 더 보여줄 것도 없고, 사실 더 보여줄 여건도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라면 국내 무대에 데뷔해서, 그동안 성원해준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에서 현역생활의 남은 몇년을 활동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솔직히 선수로서의 능력을 기대할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잘 아는 친구와 박찬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부상 안 당하고 몸관리 잘해야 맥시멈 5승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박찬호의 구위로는 일본 무대에서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기는 무리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메이저리그 17년의 경험이 있으니 계투나 마무리라면 어느 정도 해줄지 몰라도, 선발을 고집한다면 5승 이상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일본야구도 어느 정도 예상치는 있었을 것이다. 설마 박찬호가 와서 20승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일본 야구가 박찬호를 불러들인 것은 장사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박찬호가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내주면 리그의 인기를 끌어올리며 돈도 벌고 좋은 것이고,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일본의 자존심 노모마저 넘어선 동양인 최다승의 17년 메이저리거를 짓밟는 것으로 일본야구의 위용을 뽐낼 수 있으니 양수겸장에 꽃놀이패인 것이다. 일본야구로선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다. 그동안 실패든 성공이든, 선동렬, 이상훈,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이범호 등 한국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을 데려가서 그렇게 소모해왔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불행히도 내 예상이 안 좋은 쪽으로 맞아들어가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이런 저런 사정이야 있겠지만 예상보다도 일찍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두번째 2군행 수모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명예회복을 하기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워낙에 이름값 만으로도 보통 이름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웬만하게 해서는 명예회복도 안 되는 정도의 거물인 것이다. 박찬호는.

그러다 보니 이제 국내 팬들의 관심은, 그리고 언론의 관심은 국내복귀 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 최근 며칠 사이에 그 가능성을 짚는 기사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마저도 좀 힘들어보이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말 그대로 계륵이 되어버린 박찬호를 누가 데려가려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굳이 국내복귀를 하겠다면 냉정하게 박대를 하긴 힘든데(그 정도의 초 거물이다), 그렇다고 덜렁 떠안기는 부담이 큰 것이다. 거의 팀 전력에 도움이 안 될 거물을 덥썩 안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중동원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그건 구단 재정상의 이익일 뿐, 사실 팀에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난 뭐 제도적인 건 잘 모르겠는데,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야 하는 모양이다. 한화가 우선지명권을 갖고 있는데, 야왕 한대화 감독이 참 난처한 지경에 놓인 듯하다. 워낙 거물이라 대놓고 생까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같기道'의 묘수가 있으면 같기도라도 하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이건 안은 것도 아니고 팽개친 것도 아니여~" 하고..^ ^

아무리 생각해도, 야왕이 박찬호를 받아들이긴 힘들어 보인다. 일단 현실적으로, 박찬호를 들이기 위해 신인 지명권 하나를 소비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노쇠한 선수와(내년이면 박찬호가 마흔살이다!) 포텐이 넘쳐나는 20대 초반의 A급 선수를 맞바꾼다는 것은 다만 어리석은 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종범을 데려오기 위해서 류현진을 내주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감독으로서는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팀에 데려올 수 있다면 모를까, 신인 지명권 하나와 맞바꿔야 한다면 그 어느 팀도 박찬호를 데려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름값을 제외한 현실적 능력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각 구단에 병역을 필한 왠만한 중간계투 한명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왜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싶어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남은 삶을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기 위해 국내 프로야구 경력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이유가 어찌됐든 박찬호가 국내 프로야구에 발을 담그고자 한다면 아마도 국내 프로야구계에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만 그는 거물이기 때문이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닐지 몰라도 기아의 이종범과 비슷한 경우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는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고, 대한민국 프로야구판에서 천재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은 유일무이한 선수이며, 대한민국 프로야구사에 향후로도 당분간 깨지기 힘들 기록과 능력치를 뚜렷하게 새겨놓은 거물이다. 한두개의 특정 분야에서 이종범의 능력치를 넘어설 선수는 앞으로도 수없이 나올 테지만, 타격, 도루, 주루, 홈런, 수비, 작전수행능력 할 것 없이 타자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완벽한 기량을 뿜어낸 초절정 슈퍼스타는 아마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일 만큼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 선수였다. 비교할 데가 없는, 말 그대로 군계일학이고 베스트 중의 베스트였다.

그런 이종범도 지금에 와서는 계륵이 되어있다. 워낙 거물이라 팀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재작년 기아가 우승했을 때 은퇴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죽을 때도 아름다워야 하듯이 야구천재도 그래야만 했다. 당연히 더 할 수야 있겠지만 나의 남은 능력을 후배들의 미래와 맞바꾸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박수 받으며 돌아설 수 있는 타이밍을 굳이 걷어찬 것이 이종범의 야구에 대한 사랑인지 자신의 삶에 대한 열의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가 아름다운 타이밍을 놓친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야구천재는 꽃마차가 왔을 때 올라타지 않고 남아서 팀에 계속 부담을 주고 있다. 팬들이야 그가 타석에 나와서 안타를 못쳐도, 누상에 나가서 도루 하나 못해도 여전히 박수를 칠 것이다. 그는 그만한 활약을 보여줬고 팬들의 뇌리에 아름다운 기억을 수놓아 줬으니까. 하지만 팀에는 엄연히 부담이다. 성적이 신통찮다고 쉽게 밀어낼 만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스스로 물러나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감독조차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물이기 때문이다.

옆길로 좀 많이 샜는데, 박찬호가 지금 시점에서 복귀한다면(내년이 되겠지만) 대한민국 야구계에 그런 부담을 주게된다. 안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을 강요하게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자신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현실은 그렇다. 박찬호가 그저 메이저리그에서 그저 몇년 활약하다 온 선수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A급으로 십수년을 호령한 거물이고, 그 힘들던 IMF 시절 박세리와 환상의 복식조를 이루며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긍지와 희망을 아로새겨 주었던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아무리 늙다리 퇴물이 되었기로, 그냥 생까기가 미안한 국민영웅이 아닌가. 그렇기에 더더욱 어떻게 하지 못한다. 흥행카드 뭐 이런 걸 떠나서 인정상 도의상 그렇다.

이런 저런 저간의 사정을 생각했을 때, 해결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본인이 스스로 결단을 하는 것이다. 이종범처럼 적절할 때 결단을 하지 못하면 여러 사람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자신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리고 팬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힘든 선택을 강요하게 될 테고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국민영웅이 해줘야 할 마지막 선물은, 이제까지보다 더 멋지고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서 박수 받으면서 퇴장하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당연히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과 현실적 부담을 담보로 한 것이라면 과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것들을 무시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국민영웅의 통큰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박찬호가 공을 던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공을 던지는 일에서 뿐 아니라 다른 것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남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더 현명한 일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홈런만이 타자의 미덕은 아니고, 삼진만이 투수의 미덕은 아니다.
필요할 때 번트를 댈 줄 아는 타자가 멋있다. 힘이 떨어지면 맞춰잡을 줄 아는 투수가 멋있다.

한개의 진루가 필요할 때 홈런을 노리고 크게 휘둘러서 내야플라이로 기회를 날리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힘이 떨어졌음에도 삼진 잡으려고 무리하게 들어가다 홈런을 얻어맞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박찬호는 이미 아름다운 비행을 했다. 이젠 아름다운 착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