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롯기 동맹」의 마지막 주자 LG
2000년대 중반 이후로, 프로야구판에 이른바 엘롯기 동맹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뭔가 그럴싸한 동맹결사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LG,롯데,기아' 3팀의 약자 그룹을 총칭하는 표현이었다. 가을야구는 남의 일이고, 꼬박꼬박 상위권 팀들의 승수를 알토란같이 챙겨주는 '보약' 같은 팀들이었던 것이다.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는 일이 없고 3팀이서 서로 꼴찌를 면하려고 아귀다툼을 선두권보다 더 치열하게 하는 너절한 팀들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드디어 엘롯기 동맹도 깨질 때가 왔다. 롯데가 선두주자였다. 2008년 로이스터라는 흑인 감독(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오더니 냉큼 가을야구 그룹에 끼어들면서 찌질한 동맹과 이별을 고했다. 그 다음해, 기아도 보란듯이 해태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며 가을야구 정도가 아니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버렸다. 엘지팬들은 부잣집에 시집가는 딸 보내듯이 그렇게 동지들을 하나둘 내보내고 한화와 넥센이라는 새로운 친구들을 맞아들여야 했다.(이게 뭐냐고!!!)
사실, 그래도 엘롯기 동맹 때는 낭만이라도 있었다. 면면을 보면 도무지 꼴찌를 밥먹듯이 할 팀들이 아닌데 죽을 쑤는 것도 그렇고, 또 한국프로야구판에서 열성팬이 많기로 1,2,3위에 드는 팀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팀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꼴찌동맹을 맺고 있었으니 이른바 '엘롯기 동맹'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진 것일 터다.
그런데 LG가 새로운 룸메이트로 받아들인 한화와 넥센은 그런 형편도 아니었다. 모기업에서 지원을 안 해주는 것인지 사장단이 야구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도대체 이상한 구단 관리를 하면서 국보급 투수 류현진만 소모를 해대는 수상한 팀과, 영광의 현대시절 이후 팀이 팔리면서 외국계 부동산 자본에 넘어갔다가 다시 (다른 팀 모기업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영세한)타이어 업체에 인수되면서 기어이 선수 팔아서 구단 운영하는 불쌍한 팀이 돼버린 넥센과 한 묶음으로 엮이게 된 것이다. 이거, 여러모로 모양 안 나게 된 것이다.
LG팬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가을에 야구 안 본지 10년이 돼간다. 10살 남짓할 때 야구를 처음 본 아이가 군대갈 나이가 될 때까지 가을야구에 참여를 못한 것이다. 모기업이 너절한 것도 아니고 팬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개인플레이 왕국에 모래알 팀웍이라는 비아냥도 지쳐갈 때쯤, 드디어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올해 예상 외로 준수한 외국인 투구 2명과 정말 생각지도 않던 신데렐라 박현준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사실 2,3년 전부터 이미 타격은 리그 수위급이었다. 다른 팀에 가면 중심타선에 들어설 선수들이 벤치에 앉아있는 야수 부자팀이 LG였다. 그러나 봉중근 외에는 선발을 책임져줄 투수가 없어서 늘 뒷문을 열어놓고 게임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올해 드디어 10승 이상 씩을 챙겨줄 것이 확실해 보이는 투수 3명이 가담을 한 것이다. 일단 가을야구 경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드디어 엘롯기 동맹의 낙오자 LG도 화려한 비상을 하려고 하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판세의 변동, LG와 두산
올해 프로야구가 시작될 즈음, 전문가들은 대체로 SK 두산의 양강 그리고 삼성,롯데,기아,LG의 중위권 그리고 넥센,한화의 하위권 그렇게 예상했다. 대체로 들어맞아가고 있는데, 현재까지로 보면(시즌의 1/3 정도를 소화한 시점이니까 유의미한 시기) 두산의 선두권 이탈과 LG의 예상 외의 선전이 눈에 띈다.
두산은 공격과 수비 모두 침체에 빠지며 속수무책 주저앉는 분위기인데, 임태훈의 전력 이탈 외에는 크게 전력상의 문제는 없고 어쨌든 저력이 있는 팀이라 어느 시점이건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SK도 최근 4년간의 극강 분위기는 아니라, 선두권도 사실 예전처럼 난공불락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올시즌의 특징이다.
이런 와중에 LG가 단독으로 2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마도 올시즌 가장 큰 파란일 듯싶다. 어떻게 보면 두산 자리에 LG가 앉아 있는 것인데, 어쨌든 예상 외의 판도변화를 일으킨 두 팀이 고스란히 자리바꿈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매우 묘하다.
LG가 언제까지 2위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뒷문을 열어놓고 게임을 하는 팀이라, 타격이 안 받쳐주면(타격은 일정하지 못한게 특징이다. 기복이 많다.) 언제든 주저앉을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2위 또는 선두권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와 같은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주 기아와 있었던 주중 경기 1,2경기였다. 타격이 안 받쳐주니까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뉴 에이스 박현준
박현준은 어제 경기에서 LG의 새로운 에이스 자리에 확인 도장을 찍는 게임을 했다. 허무한 2연패로 침체된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는 에이스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사실 어제 경기는 구위가 압도적이진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스라는 것은 그 투수가 들어섰을 때 어쨌든 타자들도 도와주고 분위기도 이기는 분위기를 몰아가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에이스 투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팀의 연패를 끊어주고 타자들의 방망이에 불을 붙여주는 투수가 바로 에이스다. 좋은 구위 뿐 아니라 어떤 분위기를 가져가서 팀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투수가 바로 에이스가 아니겠는가. 올해 그 역할은 명백히 박현준의 것이다. 이상하게 박현준이 등판할 때는 타선도 잘 터져준다. 행운이 뒷받침 된다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분위기를 가져가는 것 또한 에이스가 가져야 할 요건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얼마전에 인터넷으로 기사를 하나 봤는데, LG의 4번타자 박용택이 자신의 배트 손잡이 끝에 '현준이 승투 만들어주는 홈런 치는 빠따' 뭐 이렇게 써놓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장난 비슷하게 그렇게 해놓은 것인데, 어쨌든 타자들도 박현준을 매우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박현준이 마운드에 오르면 4번타자도 어떻게든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투수라는 것이다.
허무하게 2연패를 당한 후 펼쳐진 어제 경기는 이제 박현준에게 LG의 에이스 타이틀을 붙여주어도 어색할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판이었다. 다른 때에 비해서 구위가 썩 좋지 않았는데(결정구로 써먹던 포크가 되지 않았다.) 직구와 슬라이더로 맞춰잡으며, 지난 2게임 동안 기가 바짝 올라있는 기아 타선을 상대로 6회까지 2실점으로 막아내는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박현준이 시즌 초반의 반짝 활약이 아니라 올 시즌 전체를 지켜봐야 할 투수로 확인받는 경기 내용이었다.
시작은 봉중근의 땜빵이었으나 결과는 봉중근의 자리를 대체하는 대활약을 박현준은 보여주고 있다. 수년간 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봉중근으로부터 그 영광의(혹은 고단한) 자리를 넘겨받은 듯하다. 타선이 어느 정도 뒤를 받쳐주고 지금 정도의 구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15승 언저리까지 가능할 듯하다. 어쩌면 다승왕 경쟁을 할지도 모른다.
투수가 어떻게 갑자기 구위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야구를 직접 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눈야구 30년의 내공도 이럴 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지금 상태로 본다면, 류현진 급은 아니라도 김광현 급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기대와 부담감을 이겨야 될 뿐 아니라 여름이 되면 체력적인 부담이라는 변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런 변수들을 잘 극복해낸다면 충분히 기대가 가능한 활약을 현재 박현준은 보여주고 있다. 올시즌 LG가 선두권에 끼어들든 아니면 가을야구판에 끼어들든, 박현준의 활약이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가 될 것은 분명하다.
LG,「선두권 싸움을 할 것인가, 중위권 개싸움에 휘말릴 것인가」주말 롯데3연전에 달렸다
당연히 최소한 위닝시리즈로 갔어야 할(기아는 어쨌든 투수력으로 버티는 팀) 기아와의 주중3연전을 2패후 1승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 LG가 롯데와 주말 3연전을 앞두고 있다. 엘롯기 옛 동지들과의 6연전이 향후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쳤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LG는 지난주 한화,넥센을 만나 비교적 여유로운 속에서 위닝시리즈를 챙겨왔다. 그리고 이번주 드디어 중위권 난장혈투를 벌이고 있는 팀들과 피할 수 없는 결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롯데는 최근 무서운 상승세로 꼴찌 앞잡이에서 단숨에 5할 승률을 맞추며 4위로 올라섰다. LG처럼 뒷문이 약하지만 나름 괜찮은 선발과 가공할 타력을 앞세워 중위권 판세를 개싸움으로 만들면서 프로야구판을 뒤흔들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바짝 독이 올라 있는 상태다. 리그 최강급의 타력들끼리 붙었으니 어쨌든 볼만해질 것이다. 선발투수가 먼저 무너지는 쪽이 진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양쪽 다 '지키는 야구'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팀들이기 때문이다.
LG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롯데를 잠재워야 한다. 어차피 힘으로 붙을 것이기 때문에 롯데를 떡실신을 시키면 중위권 개싸움판에서 한발 물러나 SK와 선두권 그룹에 묶일 것이고, 반대로 롯데에게 떡실신 당하면 도리없이 삼성/롯데/기아와 함께 중위권 개싸움판에 발을 담가야 한다. 최근 두산이 비리비리해져서, 5팀이 개난장판을 벌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선두 SK만 어부지리로 꽃놀이패를 만지작거릴 지도..
아무튼, LG는 '시즌 초반의 깜짝 돌풍을 이어가느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한발만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다. 지금 선두권을 이탈하면 아마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야구는 분위기의 게임이라 지금 분위기 탔을 때 타고 넘어가지 않으면 그대로 쭉 미끌릴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4위싸움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SK하고 친하게 지낼 것인지 한화하고 친하게 지낼 것인지, 이번 주말 롯데와의 3연전이 분수령이 될 공산이 높다. 두 팀의 색깔을 봤을 때 어차피 모아니면 도다. LG입장에서는 주중 기아 3연전을 스윕해놨으면 모를까 오히려 위닝시리즈를 내줬기 때문에 여유도 없다. 롯데 또한 마찬가지다. 분위기를 탔기 때문에 이참에 중위권 개싸움에서 힘으로 우위를 점하고 싶을 것이다. 최근 몇년간 밥이던 SK마저 위닝시리즈로 부러뜨리고 올라온 상황이다. 독이 바짝 올랐다.
악어와 사자의 싸움이다. 이기는 쪽은 먹고 지는 쪽은 먹히는 살벌한 한판이다. 둘 다 배를 채우고 악수하며 헤어지는 길은 없다.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5월말로 접어들고, 시기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초반 기싸움을 마무리짓는 타이밍이다. 이제 줄서는 일만 남았다. 앞줄에 설 것인가 뒷줄에 설 것인가. LG와 롯데의 이번 주말 3연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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