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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옥세설(褐玉世說)

훈련탄 폭발사고 뉴스를 보고 문득 생각난 것



경기도의 한 육군부대에서, 쓰다 남은 폭파용 훈련탄을 땅에 묻다가 폭발사고가 나서 사병 한 명이 완전 실명하고 한 명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감사가 나올 때가 되자 남은 탄을 처리하지 못해 문책당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땅에 매몰하려다 사고가 난 것이라 한다.

뉴스를 보는 순간, '아직도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와 관련된 기억이 내 기억 속에도 한 조각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졌던 그 일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생각났다.

나는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강원도이고 최전방 부대라는 것만 빼면 지극히 평범한 군생활을 했다. 육군 보병부대의 소총수로,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군바리 생활을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경험한 것은 철책근무 말고는 대다수의 예비역들이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 평범하고 무난한(그렇지만 X나게 힘들었던) 군시절 중에 좀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땅 파다가 탄을 파낸 일이었다. 어른들이 뻑하면 하는 말, "땅 파봐라, 10원짜리 하나 나오나." 그러나 땅 파니까 돈은 안 나오는데 실탄은 나오더라..

아마도 어느 여름, 부대 인근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군대 안 간 사람은 군인이 맨날 전투복 입고 얼굴에 위장크림 멋지게 바르고 뛰고 구르고 총 쏘고 특공무술을 연마하는 줄 알겠지만 실상 군생활의 80%는 작업(노가다)이다. 허름한 작업복 입고 땅 파고 흙나르는 것이 군생활의 거의 전부이다. 한국 내전 이후 60년간 이런 비생산적인 짓거리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반공을 국시로 삼아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보한 장성들이 군사정권시절 이후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교활한 작전'의 일환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잠시 샜는데, 암튼 어느 여름날, 일상처럼 막사 근처에서 작업을 하다가 땅 속에서 뭔가가 발견되었다.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난 일이라 내가 분명히 목격했던 일이다. 땅에서 뭔가가 탁 걸렸는데 무슨 시커먼 물체가 나왔다. 바로 작업이 중단되었고 장교들이 몰려왔다. 그리고는 일제히 그 장소에서 물러났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슨 나무로 된 박스 같은 것이었는데 일단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피신을 한 것이다.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 그게 미확인 폭발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한하게 생긴 차에 희한한 복장을 한 군인들이 부대 내로 들어왔다. 땅개인 우리들은 기껏보는 군용차량이래야 60트럭과 통차가 전부인데 암튼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땅에서 나온게 뭔지는 모르지만 암튼 위험한 폭발물일 수도 있기 때문에 폭발물 처리반을 부른 모양이었다.

그 소동을 벌이고 난 후에 나중에 듣게 된 내용은 정말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땅에서 나온 미확인 물체는 불발탄도 아니고 지뢰도 아니고 그냥 실탄일 뿐이었다. 사용하지도 않은 깨끗한 실탄이 나무박스에 든 채 몇 박스가 나온 것이다. 김장 김치도 아니고 왜 피같은 실탄을 땅에 파묻었는가, 장교들이 얘기 안 해도 우리는 대충 눈치 깠다. 남아서 그냥 버린 것이다.

전방부대는 일정한 기간 동안 돌아가면서 철책에 투입되는데 그러는 와중에 부대 막사를 이동하게 된다. 4개의 대대가 3개의 후방 막사를 쓰기 때문에 철책에서 돌아오면 원래 있던 곳으로 가지 못하고 교대하는 대대와 서로 체인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전에 그 막사를 썼던 어느 부대에서 남는 탄을 파묻은 것일 터이다.

그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최말단 소총병일 뿐이니까. 폭발물 처리반까지 불렀으니 조용히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한데 또 어떻게 보면 서로 뻔히 아는 처지라 그냥 묵인하고 넘어갔을 공산이 높다. 그런거 따지려면 한도 끝도 없을 뿐더러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먹는 것은 부족해도 탄은 남아돌기 마련이었다. 아마도 정해진 탄 소비량이 있을 터인데 문제는 그 탄을 소비할 만큼 열심히 총을 쏘진 않기 때문이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군생활의 80%는 작업이고 나머지 20%는 훈련인데 훈련 때는 탄을 쓰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에 주기적으로 탄을 소모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다 보니(왜 그런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늘 탄은 남아돌았다. 그래서 한번씩 날 잡아서 탄 소비하러 가는 행사를 하곤 했다. 지형적으로 비교적 안전한 야산에 올라가서 아낌없이 내갈기고 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쓸 일 없는 자동모드로 맞춰놓고 신나게 내갈기면 재밌기는 한데 그때도 '참 한심한 짓거리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의미 없이 소모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종류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평시에 하는 의미 없는 단순 노동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부대장급 장교들이 제 몸사린다고 사격훈련을 기피하는 것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팽팽 남아도는 시간에도 사격은 잘 하지 않고 그냥 그런 식으로 야산에서 탄을 소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아마 허공중으로 돈이 뿌려지고 있을 것이다. 군대란 여간해선 잘 바뀌지 않는 조직이니까.

잘못된 것은 개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조직이 방만하고 경직화될수록 그런 시도는 금기시 되기 마련이다. 그냥 그대로도 해피한데 뭣하러 무리한 짓거리를 하겠냐는 것이다. 군조직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수십년간 고착화된 그 내부적인 조직논리 속에서 굴러갈 뿐 외부에선 그 누구도 알기 힘들고 설사 안다 하더라도 손을 댈 수가 없다. 군조직은 스스로 개선하지 않는한 타력으로는 변화되지 않는 조직인 것이다. 말 그대로 괴물이다.

대한민국에 왜 60만 대군이 필요한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언컨대 그럴 것이다. 왜냐면 사람 몸에 코끼리 만한 머리통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인즉, 기괴한 형상을 한 괴물인데, 아무도 그것을 괴물이라고 하지 못하고 또 그것이 이상하니까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신파 홍길동이다. 형을 형이라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그런 이상한 조직구조 속에 바로 '탄 매몰'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행태가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조직이면 상상하기 힘들다. 일반 사회조직이라면 회사의 자산을 쓰레기 소각장에 버리는 짓따위가 어떻게 용인될 것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산이 불필요하게 남으면 즉시 시정을 하게 된다. 모든 인적물적 자산과 에너지는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군조직은 불행히도 그런 환경에 있지 않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으며 아무도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다.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불합리한 일들이 반복되어도 그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군대는 오직 군대의 논리만 있을 뿐이다. 그 세계에서만 통용되면 사회의 기준 따위는 상관없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징집사병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요지부동인 것이다. 희한한 군대논리로 인해 맞아죽고, 자살하고, 사고로 죽고, 병들어 죽고.. 그렇게 죽어나가는 데도 초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내전 이후로 군에서 죽은 군인들 수만 해도 전쟁 몇번 치른 수만큼 될 것이다. 이것이 정상인가. 한국은 과연 반세기 이상 전쟁없이 살아온 것이 맞는가. 전쟁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많은 수의 군인이 죽어나가는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이 세계 톱을 달릴 것이다. 반도체 수출 몇 위, 자동차 수출 몇 위.. 이런 걸 자랑스러워 하는 만큼, 군대에서 엉뚱하게 죽어나가는 수가 많은 것을 또한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전쟁 없는 나라 군인이 이렇게 많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해 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아직도 휴전중이라 군대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군사독재시절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인가.

이제는 좀 바꾸어야 한다. 여담이지만, 내가 군대 있을 때만 해도(90년대 초반) 1943년제 수통이 있었다. 한국전에서 미군이 쓰던 것이 남아서 돌아다녔던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무리한 통솔책을 쓰다 보니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그 스트레스가 터져나온다는 것이다. 군에서 폭력사고 일어나고, 2차대전때 쓰던 물건이 돌아다니고, 안 일어나도 될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모두 궁극적으로는 군조직의 방만함에 최종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관리가 안 되는 조직의 특성은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는 것이다. 왜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럭을 다시 까는가. 남는 예산을 처리할 효율적인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향후 예산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억지로라도 써대야 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은 책임지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일반 회사조직처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 그 돈을 아껴봐야 자기 월급이 오르는데 쓰이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타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군인도 공무원이라 똑같은 논리로 움직인다. 아니, 공무원 조직보다 더하다. 공무원은 그래도 사회 일반의 조직시스템에 노출이나 되어 있지, 군대조직은 완벽히 단절된 채 폐쇄되어 있다.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죽은 조직이다. 그래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덮고 수습하는데 익숙하지 개선하고 혁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신체적 능력이 왕성한 나이대의 60여만 명이 극도로 비생산적인 일(삽으로 땅 파는 짓)을 하며 2년을 소비한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군대가 없을 순 없으니, 쉽게 생각해서 그 반으로만 줄여도 국가발전에 상상키 힘든 보탬이 된다. 돈도 줄어들 뿐 아니라 수십만의 창조적인 노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으로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장기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생산해낼 것이 분명하다. 군조직이 바뀌기만 한다면(고위 장교, 장성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국가'를 위해 조금만 포기한다면) 대한민국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올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국가를 위한 길인지 군인들은 생각해야 한다. 자신들이 과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자기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군인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내 생각엔, 대한민국 군이 오늘날 이 모양이 된 것은 군인이 아닌 자가 군대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에 충성하는 무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탄 매몰 이야기하다가 좀 옆으로 샌 감이 있지만, 어쨌든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모두 정상적이지 않은 조직생리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교정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희생은 계속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세계10위 경제대국이 되어도 여전히 암덩어리를 속에 품고 사는 시한부인생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상 모든 것이 알면 고칠 수 있는데 군대 문제만큼은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