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저런 얘기들

유통기한 10일 지난 우유를 먹으면..



딸아이가 받아먹는 우유를 가끔씩 줏어먹는다. 고맙게도(!) 녀석이 매일 우유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은 아니라서 2~3일씩 냉장고 안에서 대기하던 넘들은 내 입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대개는 유통기한이 채 지나지 않은 것들을 먹게 된다.

오늘, 냉장고 속에서 유통기한이 10일 지난 우유를 발견했다.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집 냉장고의 비효율적인 관리상태 탓인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유효한 기간이 10일이나 더 지나버린 것이다. 대개 이럴 때는 그냥 따서 우유를 버리고 우유팩만 분리수거통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처리절차(?)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런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는 과감한(혹은 무모한) 짓을 해보기로 했다. 유통기간이 10일 지난 우유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생산일로부터 10일이 아닌, 유통기한으로부터 10일 지난 우유인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냥 바보같은 짓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나는 왕성한 호기심과 그리고 그보다 더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감연히 한번 결행해보기로 한 것이다.

뭐, 굳이 말하자면 수년전 두 달 지난 우유도 맛본 적이 있다.(참조) 그땐 모르고 한 모금 먹었다가 식겁하고 그냥 버렸는데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알면서 일부러 먹으려니 조금 찜찜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뭐 그런 것에 쫄아서 겁낼 인간인가.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살아온 인생이 아니던가.

한 모금 먹어보니 기분이 찜찜해서 그렇지 별 문제는 없는 듯했다. 걸쭉하지도 않고 중요한 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가리는 주요한 기준이 냄새인데 뭐 괜찮은 것같다. 그래서 쭉~ 마셨다. 시원하다. 뭐 설마 죽기야 하겠냐..

아닌게 아니라 올해 두 번이나 죽을 뻔한 적이 있다. 뭐 '죽을 뻔'까지는 아니고, 이틀 동안 무장해제 당했을 정도로 꼼짝 못하고 겔겔거렸더랬다. 정확하진 않지만 뭔가 잘 못 먹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는데, 증상이 딱 '뭔가 잘 못 먹어서 탈 난' 증상이었던 것이다. 이젠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일찌기 뭘 먹고 탈 난 적이 없었는데 올해 들어서만 두 번을 그러고 나니 아닌게 아니라 자신감이 좀 수그러들기도 했다. 쩝..

어쨌거나.. 그렇다고 한들 고약한 버릇이 쉬 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먹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충만한지라 오늘도 유통기한 10일 지난 우유에 도전한 것이다. 그 결과는..

소화 잘 됐다..

내가 이렇게 터무니 없는 짓을 하고 굳이 내블로그에 써 올리는 이유는, 유통기한 하루 이틀 지났다고 '먹으면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물론 나같은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체질적으로 소화능력이 좀 우수한 편이라 약간의 예외는 있다.(한의학적으로 보면 소화기가 강하고 호흡기가 약한 태음인인가 하여튼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에도 유통기한 지났다고 바로 못 먹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하루 이틀 또는 2~3일 정도는 문제가 없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유독 소화기관이 민감하거나 약한 사람 혹은 평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이런 쓸데 없는 짓은 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반드시 정상적으로 냉장보관 되었을 때만 고려될 사안이라는 것이다. 냉장보관 되지 않은 것은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았어도 위험한 것이니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나는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어도 냄새를 한번 쓰윽 맡아보고는 괜찮다 싶으면 그냥 먹곤 한다. 후각이 예민한 편인지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것인지 지금껏 큰 문제는 없었다. 나의 경험으로는,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냄새가 중요하다. 인간이 수백만년 동안 진화해오면서 아마도 부패한 음식에서 나오는 냄새는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냄새는 몸에서 필요한 음식의 냄새로 인지하고, 먹으면 위험한 음식물의 냄새는 불쾌감이 들도록 진화해왔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몸에 통증이 오는 것 역시 '다시는 그런 음식을 먹지 마라'는 신호로써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로 발전되어 온 것일 터다. 그러니 대개의 경우 위험한 음식은 본능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다만 문명생활에 길들여져서 그런 감각이 많이 퇴색되어 온 것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몸의 감각으로 음식을 분간해내지 못하게 되면서 요즘 사람들은 숫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다. 때로는 결벽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는 하는 것이다. 나하고 같이 사는 여자(우리 딸의 엄마 ^ ^)도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이, 유통기한 날까지의 음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면서 하루만 딱 지나도 절대 먹으려 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혹시 하루 사이에 확 상해서 도저히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암만 생각해도 그건 심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찜찜한 것이다. 그래서 버려지는 것이 상당하다. 뭐 내가 대단한 환경주의자이거나 무슨 알뜰생활 전도사라서가 아니라, 나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이 버려지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내 나름의 '본능적 감각'을 동원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먹어치우곤 한다. 마눌님에게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던 것이 나에게는 아무 문제 없는 음식이 되어 늘 아무 문제 없다. 과연 문제는 무엇일까..

암튼, 나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하더라도 대개 사람들이 유통기한을 폐기처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유통기한은 유통시키기에 유효한 기간을 표시한 것이지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다소간의 여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수치에 얽매여서 기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마눌님의 기벽이 하나 있는데(내가 보기에), 마트에서 음식을 살 때는 유통기한이 하루라도 더 긴 제품을 사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오만 용을 쓰다가, 진작 사 가지고 와서는 먹고 남은 것을 하염없이 방치하다 그냥 냉장고에서 썩혀 내버린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그냥 유통기한 지나지 않은 것을 적절히 사와서(어차피 안 먹고 버릴 건데 1+1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때 그때 먹고 치우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상한 것에 집착하다 보면 본질을 놓치기 십상이다. 수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아니라 '먹는다는 행위'에 좀더 집중한다면 훨씬 여유로운 생활이 될 수 있다. '유통기한'과 '1+1'이 나의 삶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하찮은 질문을 한번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냥 한번 주절거려 보았다. 질문은 하찮은데 아마도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10일 지난 우유를 거침없이 마셔대는 막무가내 인간도 있으니 너무 겁낼 것 없다는 것이다. 인생에 모든 제약은 없을 수록 좋은 거니까.



천년도 더 전에 원효대사도 그러셨던 것 같은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