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일요일 방송되었던 '나는 가수다'를 본 소감을 말해보려 한다. 뭐, 다 알려진 것처럼 김경호가 '국민언니' 컨셉으로 나가수 최초의 2연속 퍼펙트 1위로 성가를 드높였고, 매경연 간당간당 탈락의 위기를 넘겨오던 장혜진이 마지막 무대에서 그만 탈락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장혜진은 경력에 비해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던 '그냥 그런 가수'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번 나가수 참여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는 나가수에서도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물론 나는 장혜진이 나가수 원조요정 박정현에 이어 '조금 삭은 요정'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생각하지만(그의 무대는 대부분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함) 나가수 평가에서는 여전히 저조한 결과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당연 나가수에서는 나가수의 방식이 있고 나가수를 통해 평가하는 청중평가단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 가타부타 말할 것은 아니다. 이 프로는 엄연히 예능 프로니까. 어쨌든 장혜진은 그다지 주목 받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겨우 연명하다 탈락한 몇몇 가수 축에 포함되게 돼버렸다. 김범수와 박정현처럼 장수와 함께 대국민적 호응까지 두마리 토기를 모두 얻은 가수가 있고, 정엽처럼 한 번의 경연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남는 장사'를 한 가수가 있는가 하면, 장혜진처럼 갈때까지 갔으나 별 재미를 못 본 경우가 있는 것이 냉혹한 서바이벌 예능의 장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번 마지막 무대를 보면서, 최소한 마지막 무대에서 만큼은 장혜진이 정말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바비킴의 "사랑.. 그놈"을 불렀는데, 워낙 개성이 강한 창법을 구사하는 바비킴이라 소화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혜진은 거의 완벽히 자신의 노래로 바꿔서 무대를 선보였다.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 첫 소절을 내뱉는 순간, 나는 '아.. 장혜진이다..' 하는 느낌이 확 왔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바비킴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완벽히 자신의 노래로 체화시켜서 소화해내었고, 마치 원래 자신의 노래인양 자연스러운 감정을 끄집어내어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억지로 뭔가를 더 쥐어짜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신의 노래로 나가수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무대였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장혜진이 "'나는 장혜진이다'라고 생각하고, 가장 장혜진답게 무대 마무리하겠습니다."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의 무대를 보고나서 든 생각은 정말 딱 자신이 말한 그대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혜진이다' 이 말이 딱 맞는 그 자신의 무대를 선보였다고 나는 느꼈다. 가수로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자신만의 무대, 자신만의 노래를 잘 보여준 인상적인 무대였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장혜진이 그간 보여준 무대중 가장 훌륭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청중평가단의 느낌은 달랐나 보다. 나는 어쨌든 1위나 2위 안에는 포함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4위 5위를 지나 6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뭐 어쨌든 사람들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또 이 경연은 어디까지나 TV를 통해 보는 시청자가 아닌, 현장에서 무대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청중평가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니 뭐라 말할 것은 없다. 룰은 룰이고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무대였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장혜진이 이 결과로 인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처럼 굉장히 좋게 본 사람이 있다는 것, 아니 많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서바이벌 무대라는 특성에 얽매여 다소 오버하고, 다소 강박에 시달리고, 때로는 파격적이거나 특이한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장혜진의 마지막 무대는 그 모든 것들을 놓아버린듯 정말 편안하고 장혜진다운 무대였다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더 좋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뭔가 관객을 몰입시키고 눈길을 끌고 자극시키고 감동시키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냥 노래 자체를 전달하려는 듯한 편안함이 있는 무대였다. 그래서 더욱더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무대에서 장혜진이 정말 장혜진다운 무대를 선보이며 멋진 피날레를 장식했다고 생각한다. 별로 장혜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그저 적당한 순위를 얻어서 명예졸업을 했더라면 오히려 더 실망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가 나가수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퇴장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명예졸업장을 주고싶다. 뭐, 그가 이 글을 보지 못하더라도... -.-;
마지막으로, 내가 장혜진을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고 암튼 꽤 오래전이었던 것만 기억한다. TV에서 그의 히트곡 '키 작은 하늘'을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무슨 스키장 같은 곳에서 하얗게 눈이 덮힌 배경으로 노래를 했었다. 그런데 이 언니가 그 삭막한 장소에서 무슨 감정이 북받쳤던 것인지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평소 나의 지론은, 가수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노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레코딩에서 그런 식으로 부른 노래를 매우 싫어하고, 감정과잉의 노래 스타일을 매우 경멸하는 편이다. 가수란 모름지기 자신의 감정을 한번 걸러서 전달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 이상의 자신의 감정을 거기에 이입할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감정의 전달을 방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예술행위에는 절제가 생명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암튼 그래서 평소 가수가 노래에 너무 몰입해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때는 어쩐 일인지 무척 인상 깊게 그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언발란스한 주위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내 감정이 그때 좀 울적했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암튼 별 생각없이 듣던 그 노래가 매우 새롭게 들렸던 기억이 있다. 말 그대로 '노래가 나에게 확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살다보면 그런 때가 가끔 있는데, 유치뽕짝한 노래가 나의 삶의 어느 순간과 기막힌 타이밍에서 만날 때 그 노래는 특별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날 그 순간, 장혜진의 키 작은 하늘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어쨌든, 노래를 잘 하는 것이야 가수에게 할 말은 아니고, 그때 처음 장혜진이란 가수를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는데, 역시 좋은 가수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음색은 장혜진을 장혜진답게 만드는 특별한 요소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멜로디나 가사를 제쳐두더라도 가수는 역시 매력적인 음색과 더불어 감정을 전달하는 절제된 감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것들이 나가수 무대에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매번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게 된 것이 다만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나가수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된 장혜진을 아쉬워하며, 허한 마음에 그냥 주절거려 보았다. 암튼 그의 마지막 무대를 정말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결코 부끄러운 꼴찌가 아니었다고, 그래서 내 마음 속의 명예졸업장을 주고싶은 것이다.
"잘 봤습니다. 그리고 비록 비공식의 의미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명예졸업장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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