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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옥세설(褐玉世說)

따문수 씨, 너나 잘 하세요.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또 구설에 올랐다. 정치인은 부고(訃告) 말고는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 무조건 남는 장사라고 누가 그러던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 설마 진짜로 그럴 리야 있겠는가마는, 최근에 강용석이를 보면 아닌게 아니라 그말이 진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랄맞을 정치판..

아무려나, 김문수 지사가 이번에는 119에 전화를 건 일로 세상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대충 이렇다.


노인요양원을 방문한 김 지사가 암환자 응급 이송 체계를 묻는다며 119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도지사라고 말하는 전화를 받은 상황실 근무자가 장난전화인 줄 알고 건성으로 응대했다.
이 일이 있고난 후, 경기도는 해당 소방관을 전보조치했다.



뭐, 대충 이렇게 됐다는 게다. 매뉴얼대로 응대를 하지 않은 소방관이 문책을 당한 것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최효종이 좀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해당 소방관이 문책을 당한 것이 "119 전화를 받을 때 이름과 직위를 밝히고, 신고전화에 성실히 응대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법도 법이고 어쨌든 규정은 규정이니까 FM대로 하지 않은 소방관이 잘못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하지만 정황을 놓고 봤을 때, 과연 그 상황이 해당 소방관의 잘못으로만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114나 119는 별의별 잡놈들이 다 장난질을 해대는 감정노동의 대표적인 곳이 아닌가. 특히나 119는 긴급전화다. 그래서 시시껍적한 전화질을 하거나 별로 시급하지 않은 듯한 전화를 하면 당연히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 힘들다. 114처럼 비정규직 노동자가 억지로 응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시시껍적한 전화를 받고 있는 동안에 누군가가 죽어갈 수도 있는 상황을 늘 안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 도지사요" 하고 누군가 말한다면 백이면 백 장난전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질 않는가. 내가 볼 땐 "니가 도지사면 나는 대통령이다" 하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래도 근무중이니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소방관은 '무슨 용무냐'고만 계속 되물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진짜 도지사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 도대체 김문수는 뭘 기대하고 그렇게 대짜고짜 "나 도지사요, 당신 관등성명 대봐." 하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암환자 응급 이송 체계를 묻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소방서의 담당자한테 묻든지 해야하는 것이지 119에다가 왜 전화를 하는가. 119가 무슨 궁금한 거 물어보는 곳도 아니고, 그리고 이송체계를 점검하고 싶었으면 그냥 물어보면 되지, 뭔 염병한다고 "나 누구누군데.." 하고 깔고 시작하나. 그 잘난 벼슬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건가.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물어보는 거면 아마 내가 전화를 했어도 그 소방관이 대충 이야기를 해줬을 것같다. 굳이 도지사니 뭐니 설레발 떨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오해살 만한 짓을 해놓고 책임을 묻는다니, 함정수사나 함정단속과 다를게 없다.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규정이라는 것도 좀 우습다. 119와 같은 긴급전화에 무슨 관등성명을 대게 돼있나. 무슨 동사무소도 아니고. 내가 전화해서 "아니 뭐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고, 당신 직급하고 이름이 뭐요?" 하고 물어보면 공손히 대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공공기관에 문의를 하는 것과 긴급전화는 좀 달라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맨날 자기집 고양이 구출해 달라고 119에 전화를 하고, 자기집 문 따달라고 119에 전화를 하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다 얼마전에는 급기야 고양이 구출하다가 소방관이 순직한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지 않았는가. 이게 무슨 짓인가. 긴급을 요하는 업무는 긴급한 용무에만 응하도록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도지사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한가하게 전화해서 엉뚱한 소리하는 것에는 응대할 필요가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응급체계 물어보는 것이 긴급한 일인가? 김 지사는 그 정도 판단도 할 수 없는 사람인지 묻고싶다. 자기집 문이 잠기면 당연히 동네 열쇠집에 의뢰를 해서 수고비를 지불하고 문을 따야 되는 것이다. 그런 걸 상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위급한 일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119에 전화해서 집 문을 따야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5살짜리 아이를 두고 잠시 시장보러 나갔는데 한참 시장을 보다가 문득 가스렌지에 뭘 올려두고 온 것이 떠올라 급히 뛰어들어오다 그만 열쇠를 잃어버렸다면 그때는 119에 연락을 하는 것이 맞다. 시간이 지체되면 집에 불이 날 수도 있어 생명이 위급한 순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 위급한 상황이다. 똑같이 '문을 딴다'는 행위에도 분명 위급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명백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김문수 지사는 왜 긴급전화에 전화를 해서는 한가하게 "나 도지산데.." 하고 거드름을 피우신 건가? 우선 그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근무중인 소방관의 대응방식을 따지기 이전에 상황설정이 이미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누가 누구에게 질책을 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엔 그럴만한 주제가 안 되는 것같다.

김 지사, 일전에 '따문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지자체의 수장일 뿐 아니라 차기 대권의 유력주자인 유명인사가, 그것도 대중강연이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여자 따먹는다"는 상스러운 표현을 써서 망신살이 단단히 뻗쳤었다. '여자 따먹는다'는 표현은 나같은 필부도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 저급한 표현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표현을 쓰면 매우 격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천박해 보인다. 그래서 나같은 평범한 사람 조차도, 격이 없는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술자리에서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그런 없어보이는 말을 대권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공적인 장소에서 함부로 썼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멘탈리티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나는 느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런 상황을 맞고보니 그 행실이 어디가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개념을 좀 탑재해야 하는 것은 소방관이 아니고 김 지사 본인인 것이다. 그 소방관은 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책을 당할만큼의 일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개념없이 불상사를 유발한 김 지사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 파악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거나 엉뚱한 전화질을 해대서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명백히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여자를 따먹는다'는 것이 그냥 나온 표현이 아닌 것이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입밖으로 나온 말은 명백히 그 사람의 무의식 또는 심층의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프로이트 형님이 갈파하지 않았던가.

질책을 하는 것은 좋은데, 자격을 좀 갖추고 해야 될 것 아닌가. 자기 행실은 개차반이면서 어디서 지적질에 훈장질을 하려고 드느냔 말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친절한 금자 언니의 명대사를 돌려주며 너저분한 글을 끝내려고 한다.

"너나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