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쯤, 알로카시아가 이파리가 다 말라비틀어지더니 급기야 맨몸뚱이만 남은 흉악한 꼴이 되었다. 대충 보니 그나마 몸체도 바싹 마른 것이 생명력이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을 베란다에서 방치하다 한겨울에 그 화분을 엎어서는 다른 놈을 심고, 뽑아낸 알로카시아는 그냥 베란다 한구석에 내버려뒀었다.
그렇게 두어달 지났을까.. 올 봄 접어들 때쯤 무심코 베란다 정리를 하다가 이넘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맨 위쪽에 한 2~3cm 가량 싹이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이게 뭔 조화속인지.. 긴가민가 하면서 일단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심어나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썩고 바싹 말라보이는 뿌리 밑둥은 톱으로 잘라내고 빈 화분에 흙을 채워넣고는 조심스레 심어주었다.
사실 처음엔 별 기대 하지 않았다. 뿌리도 없을 뿐더러 그 독한 겨울을 베란다에서 흙도 없이 맨몸뚱이로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냥 몸체에 남아있는 영양분이 있어서 날이 따뜻해지니까 움이 좀 터오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무려나, 밑져도 본전이다 싶어서 일단 물을 듬뿍 주고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이 넘이 하루가 다르게 싹이 쑥쑥 올라왔다. 이 알로카시아란 넘이, 잎이 없으면 맨몸뚱이는 삭막하기 그지없는데 그 바싹마른, 허물벗은 배암 껍질같은 그 사이로 물기를 머금은 파란 싹이 올라오는 것이 여간 신통방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싹이 올라오고 거기서 두번째 싹이 갈라져 올라왔다. 그때쯤에는 '아.. 요고 살아나는 모양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번째 싹이 올라오고는 한동안을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마치 생장이 멈춘듯, 한 보름 넘게 그 상태 그대로였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씩 물을 주며 기다려보았다. 그랬더니 오랜 기다림에 답이라도 하듯이 드디어 두번째 싹에서 새로운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올라오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 실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세번째로 갈라져 올라온 넘은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뾰족이 올라오는 싹에 드릴 날처럼 줄무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줄무늬의 정체는 얼마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는데, 다름 아닌 이파리였던 것이다. 조그마하게 감겨있는 이파리는 며칠새 쑥 자라서는 이윽고 감겨있던 잎을 폈다. 고깔같이 생겼던 잎이 벌어져서 온전한 잎의 형상으로 펴질 때는 정말 생명의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파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점점 크게 펼쳐졌고 곧 그 줄기에서 새로운 잎이 돋아올라왔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번째 이파리도 이제 곧 펴지기 직전이다. 이제 곧 3개가 되고 4개가 되겠지.. 그러면 온전한 알로카시아의 꼴을 하게 될 것이다. 죽었다고 버려놨던 넘이 이렇게 회생을 하다니.. 새삼 생명력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넘이 부활을 하기 전에는 이 넘의 정체도 몰랐었다. 그냥 시장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잔 만한 조그만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넘을 사와서는 구석에 놓고 기르던 것이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게다. 이번에 이렇게 신기한 경험을 하고는 급관심이 생겨 원예점 아줌마한테 물어보고 이름을 알아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된 녀석의 이름은 '알로카시아'...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암튼 너무 흔한 넘이라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 좀 관리해줘야겠다. 그동안 좀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 화분갈고서 그냥 쓰레기통에 직행했으면 아마 그냥 그렇게 죽었을 테지.. 무관심이 오히려 보약이 된 것인지, 어쨌던 살아나게 됐으니 천만다행이다. 식물도 다 제 타고난 명이 있다보다.^ ^
앞으로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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