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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역해

노자 도덕경 33장

知人者智,自知者明。
勝人者有力,自勝者強。
知足者富, 強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褐譯>

남을 아는 것은 과연 똑똑하다 할 만하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 밝은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과연 힘이 세다 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정 강한 것이다.

 

족함을 안다면 과연 여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써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뜻이 있는 것이다.

 

그 자리를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면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오래 사는 것이다.



<褐解>

별로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장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모습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댓구적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것도 훌륭하지만 더 좋은 것은 이것이다.'라는 대긍정의 표현으로 해석하였다. 기존의 해석대로 하면 콘트라스트만 너무 강조되고 불필요한 가치의 우위만 논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노자의 언설들은 무언가를 딱 잘라서 가치의 우위를 논하는 것을 별로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이것이 아니라 이것'이라기 보다는 '이것 보다는 이것'이라는 투의 논리적 흐름이 더 강하다. 그것은 노자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설명방식이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이 문장들을 '앞의 것도 좋지만 뒤의 것이 더 낫다'는 구조 속에서 이해하고 풀이했다.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의 풀이 방식이 좀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知人者智,自知者明。

타인을 아는 것은 역시 지혜로운 일이다. 많은 경우에 타인의 성향과 욕구 그리고 전략을 알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것은 꼭 역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배려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타인을 안다는 것은 유연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형성해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보면, 타인을 잘 알지 못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귀찮은 일에 자꾸만 엮이게 된다. 남을 아는 것은 지혜로운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좋은 것은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라고 노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이야말로 밝은 것이다. 현명한 것이다. 즉, 타인을 잘 아는 것은 똑똑한 것이고 자신을 잘 아는 것은 현명한 것이라는 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예를 들자면, 타인을 잘 아는 것은 손재주가 좋은 것이고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원리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손기술도 분명 좋아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리에 밝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타인을 아는 자를 智라 하고 스스로를 아는 자를 明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타인을 잘 아는 것은 좋은 일인데, 더 좋은 것은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다." 참 좋은 말이 아닌가.


勝人者有力,自勝者強。

앞의 것과 똑같은 논리구조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강한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남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극복하기가 매우 쉽다. 나의 감관에 포착되는 시공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내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1을 하면 나는 2를 하고 저 사람이 2를 하면 나는 3을 하면 된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나의 시야에 보이기만 하면 극복할 수 있다.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전략이 서고 계획이 나온다. 나의 노력만 뒤따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이기는 것은 매우 힘들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나를 인지하는 것조차 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연 어느 정도 해야 이길 수 있는 것인지 측량이 안된다. 객관적인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파악도 안되고 전략도 안 나온다. 화살이 스스로를 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 어떤 어려운 표적도 다 맞출 수 있지만 스스로를 맞추긴 힘들다. 목표는 끝이 있지만 과정은 끝이 없는 것이다. 타인은 목표이고 자신은 과정이다. 그 불안정함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특정한 분야에서 월등한 성취를 이룬 사업가, 정치가, 예술인, 운동선수, 예능인 등 많은 사람들이 허무한 개인적 실수로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한 타인들을 이겼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점령가능한 지점(사회적 지위 또는 성취)을 정복했다. 그리고는 허무한 것에 속절없이 무너져 간다. 각종 스캔들, 사건 사고, 부적절한 처신, 인간관계의 실패 등 자신이 최고가 되었던 분야 이외의 곳에서 터무니 없는 짓을 해 명성과 명예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은 이겼으나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분명한 목표를 이루는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나 스스로를 컨트롤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知足者富, 強行者有志。

세상에 제일 무서운 말이 '적당히'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알 수가 없다. 적당히 잘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적당히 멈추지 않고 과하게 하다가 사단이 나기도 한다. 결과가 좋으면 칭찬을 들을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욕을 들을 것이다. 결국 적당한 것의 기준은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말인즉, 적당하다는 것의 정도는 결국 자기만족에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만족한 수준까지가 적당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은 것이다. 적당히 하면 자빠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또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왜냐면 그 지점이 딱 적당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족함을 알면 여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뜻이 있다면 더 나아가서 힘써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좋은지 좀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有志'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욕심과는 다르다. 내가 이미 배가 부른데 떡을 하나 더 먹는 것은 욕심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더 이루고 싶은데 현실에 안주해서 주저앉고 만다면 의지가 없는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언뜻보면 이 구절은 노자 전체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중용의 도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의지와 욕심은 다른 것이다. 욕심은 필요치 않은 것을 탐하는 것이고 의지는 스스로의 향상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구절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에서 나아가 교만해지고 자만하게 된다면 그것은 욕심일 테지만 스스로를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의지인 것이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그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면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목숨이 긴 것이다. 부장이 되고 사장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누구나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우러러 보고 그 자리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모두가 선망하는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좋은 것을, 어떻게든 오래 붙잡고 있고 싶어 한다(不失其所). 하지만 자리를 보전하려 한들 그 자리가 영원할 순 없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오래 버티려면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부질없는 짓이란 말이다.


진짜 오래가는 것은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도 그 자리에 내 이름이 남아 있을 때 진정으로 오래간다는 것이다. 내가 없어져도 내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때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내실을 기하고 좀더 본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오래 간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도 영원히 그자리는 내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설사 딴 사람이 앉아있을 지언정.


대운하를 파서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면 오래갈 것이다. 아마도 수백년 혹은 수천년간 그 흔적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더러운 이름이. 하지만 진짜로 오래가려면 시멘트 바닥에 이름을 새길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새겨야 한다. 그것이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死而不亡) 길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앞에 어떤 것이 과연 옳고 바른 길인가를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 어떤 초대형 토목공사를 일으킨들, 그것은 의자에 이름을 새기는 어리석은 짓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그 자리의 주인으로서 오래 기억되길 원한다면 그 자리의 주인된 마음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인지를 진지하게 책임감을 가지고서 생각해볼 일이다. 역사가 시멘트 바닥에 새겨져 남을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토건만능주의의 20세기적 퇴행 인간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3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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