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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얘기들

시계 샀다.. 세이코 SNZG09J



시계 하나 장만했다. 오랫동안 시계가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늘 그렇듯이 별반 불요불급한 것이라서 그냥 이냥저냥 삐대던 것이 수년이 지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시계가 갖고 싶어졌다. 그냥 삶이 좀 훌~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가는 때문인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 뭔가 하나 해야겠다는 막연한 욕구가 시계로 분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차를 바꿀 순 없는 거니까. -.-;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데 벼르다 벼르다 겨우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3,4년 전에 만년필을 살 때도 그랬다. 수년간 만년필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비교적 저렴한 펠리칸 만년필을 하나 샀었다. 무척 만족했고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내가 그것을 사기 위해 지불했던 금액의 몇배 아니 10배는 넘는 만족감을 맛본 것같다. 이런 것이 소소하니 삶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문득 만년필을 척 꺼내서 쓰는 그 손맛이란.. 거기다 모양도 얼마나 그럴싸한가. 괜히 폼 좀 나는 것이다.

아무튼 살다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잘 안 하게 되거나 잘 못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쩌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면 당장 하게 되겠지. 아무려나, 마음 한 구석에 은근히 원하고 있던 것을 결국 하게 되는 때는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멋진 것을 발견해서 결정적인 뽐뿌질을 받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삶이 훌~ 해져서 영혼의 공복감이 찾아오든가..

참 오랫동안 시계 없이 살아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까지 주는(여자만 빼고 다 준다. 쿨럭..) 완전 기숙형 2년제 국립대학 '군대'에 있을 때 시계를 마지막으로 찼었고, 그 이후로는 일하다 얻은 싸구리 기념품 시계를 잠시 썼던 것 외에는 십수년간 시계 없이 살아왔다. 아마도 대개의 현대인들이 그렇듯 시계란 것이 예전처럼 삶에 꼭 필요한 필수품도 아니게 됐을 뿐더러, 휴대폰을 비롯해 늘 휴대하고 다니는 왠만한 전자제품에는 거의 시계 기능이 있어서 따로 시계를 차야 할 이유가 그다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시간을 알기 위한 이유로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손목에 달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기 싫은 것이다. 이제는 시계를 차는 유일한 이유는 아마도 패션의 차원일 뿐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용적 목적보다는 장신구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나도 뭐 딱히 시계의 기능이 필요하진 않다. 남들 다 있는 휴대폰을 나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패션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인간인지라, 단지 모양새를 위해 시계를 찬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건조한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왜 시계를 원했을까.. 삶에는 미스테리한 것이 참 많다.



암튼, 시계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며칠간 인터넷을 두드려 보다가 내 눈에 딱 띈 것이 이 넘이다. 세이코 SNZG09J. 까만색(SNZG15J), 짙푸른색(SNZG11J), 국방색(SNZG09J), 베이지색(SNZG07J) 이렇게 4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국방색을 골랐다. 원래 초록색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까만색은 너무 칙칙하고 짙푸른색은 너무 튀어서 국방색과 베이지색을 두고 고민하다가 베이지색은 너무 맥아리 없어 보이고 밋밋한 것 같아서 국방색으로 최종 결정했다. 받고 보니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괜찮다. 마음에 든다. ^ ^

시계를 고르면서 내가 염두에 둔 것이 몇 가지 있다.

1. 바늘시계일 것.
2. 디자인이 너무 튀지 않을 것.
3. 세이코 시계일 것.
4. 야광 기능이 있을 것.
5. 직물 밴드일 것.

이상 5가지였다. 한가지 더 있었다면, 너무 비싸지 않을 것. 마눌님의 윤허를 득할 수 없다.^ ^

1번과 2번은 내 나이와 연관이 있다. 이젠 무난하고 점잖아 보이는 것이 좋아지는 때가 된 것이다. 이 나이에 디지털 시계를 찰 수도 없을 뿐더러, 디지털 시계가 바늘시계의 그 감성적인 맛을 결코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자인 측면에서 내가 원한 것은,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또 너무 점잖아 보이지는 않는 것이었다. 무난하면서도 적당히 스포티한 디자인을 원했다.

3번은 사실 굳이 세이코 브랜드를 좋아하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시계라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가의 명품시계를 찰 순 없지만 그렇다고 패션 위주의 메이커를 선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 성향상. 그래서 기준으로 삼은 것이 세이코다. 시계쪽에서는 나름 역사와 전통 그리고 기술력을 인정받을 뿐 아니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시계도 다양하게 내놓는 대중적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야광 기능은 사실 좀 유치하긴 한데(초딩도 아니고 야광기능이라니..ㅋㅋ), 밤에 자다가 한번씩 깨면 시간을 알 수가 없어서 더 자야할지 깨야할지 난감한 경우가 가끔씩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알람을 맞혀놓고 일어나야 하는 긴급한 일은 아니지만 특정한 시간대에 일어나고 싶을 때, 야광기능이 꼭 필요하다. 다분히 실용적인 이유..^ ^

직물 밴드를 선호하는 것은 예전에 찼던 시계의 영향도 있지만 왠지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스테인레스로 된 밴드는 왠지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 지나치게 점찮은 이미지를 풍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적절히 스포티한 것이기 때문에 스테인레스 재질은 아무래도 적당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폴리우레탄 계열의 밴드는 일단 피부에 닿는 느낌도 안 좋을 뿐 아니라 다소 날리는 이미지가 있어서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직물 밴드로 결정.

아무튼 이런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고른 것이 바로 이 SNZG09J다. 내가 원한 조건에 거의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다.



디자인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더 낫다. 썩 마음에 든다. 꽤 정교해보이기도 하고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다만, 두께가 약간 두텁다. 두께만 조금 더 얇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밀리터리 컨셉으로 나온 것이라 그런지 다소 거친 느낌도 있다. 세련되기 보다는 우직한 느낌이랄까. 기능은 딱히 없다. 100미터 방수된다. 뭐, 샤워를 하거나 여름에 개울물에 들어가는 정도는 충분하겠다.^ ^



야광 모습. 어두운 데서 매우 잘 보인다. 사소한 것이지만 만족감은 매우 크다.^ ^  "내 시계 야광 된다~~"



뒷모습. 직물 밴드가 그런대로 모양이 난다. 처음이라 다소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손목 굴곡에 따라 길이 들면 딱 맞을 것이다. 그리고.. 직물 밴드는 세월을 좀 먹어서 약간 낡은 듯한 느낌이 나면 그때가 더 좋다. 몸과 일체가 된 느낌이랄까. 스테인레스나 폴리우레탄 재질에 비해 확실히 그런 측면이 좀 있다.



이 시계의 특징 중 하나인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눈으로 볼 수 있다. 상당히 특이한 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뒷면을 투명한 유리로 덮개를 해서 안쪽이 들여다 보인다. 시계를 움직이면 반원 모양으로 생긴 저 부분이 빙글빙글 도는데, 아마 저것이 돌면서 그 감는 힘으로 기계를 돌리는 구조인 듯하다. 배터리를 갈아야 하는 불편함은 없는 대신 계속 차고 있어야 한다는 거.^ ^  물론, 그냥 놔둔다고 해서 바로 서진 않는다. 아마도 꽤 오래 사용하지 않고 놔두면 멈추겠지. 뭐 그렇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시간을 다시 맞추고 그냥 차고 다니면 된다.^ ^


시계 하나 사고 자랑질 좀 했다. 혹시 시계를 구입하려고 찾는 분이 있다면 참고가 되길 바라며 이만...




▒▒▒[덧붙임]▒▒▒▒▒▒▒▒▒▒▒▒▒▒▒▒▒▒▒▒▒▒▒▒▒▒▒▒▒▒▒▒▒▒▒▒▒▒▒▒▒▒

두께가 약간 두텁고 무게가 다소 묵직한 것은 아마도 오토매틱 무브먼트의 특징인 것같다. 태엽을 감아주는 장치가 들어가야 되니 아무래도 전자식 보다는 공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뒷면을 보면, 반원 모양으로 생긴 추가 움직이는 부분이 다른 전자식 시계에는 필요없는 부분일 테니 그만큼 더 두터워질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그리고 설명서를 보니, 태엽이 완전히 감긴 상태에서는 40시간 정도 시계가 기동한다고 한다. 시계가 완전히 감기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계가 늦게 갈 수 있으니 하루 8시간 정도는 착용할 것을 권장. 말인즉, 계속 차고 있어야 하고, 하루 이틀 정도 버려두면 파업(?)을 한다는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몸에 달고 다니면서 보살펴 줘야 한다는 뜻이다.

쿼츠 시계가 아니고 기계식 시계라 밥 안 주면 일 안 한단다.^ ^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다. 왠지 모르게 더 친밀감이 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넘이 아니라, 내가 가까이 하고 보살펴 줘야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 같은 느낌?..

24시간 붙어다니는 것이 어디 보통 인연이더냐. 같이 한번 살아보자. 요놈아~